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과도기의 사람들은 언제나 괴롭다 -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베리알 2012. 1. 4. 23:18


얼마전 서점에서 중국사 관련 책들이 뭐 나왔나 둘러 보다가,

페이지 스르륵 넘기다가 그대로 제자리에 고이 박아 넣은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


(아, 근데 이 표지가 맞나 잘 기억이 안 나넹... ^^;;;)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 고대 신화전설의 시대에서 신해혁명까지

...라는 책인데, 내가 이 책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원위치에 넣어 버린건

무슨 허접한 내용이 적혀 있거나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거나,

혹은 중국의 공정을 돕거나 찬양하는 그런 내용이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난 이 책 내용을 제대로 안 봤기 때문에, 실제로 책에 저런 내용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


 내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원위치 시킨 이유는 단 하나... 인명 + 지명 표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중국어권 인명과 지명 표기는 "개판"이라고도 하고,

"과도기"라고도 할 수 있다.


 대충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이전은 그냥 한자 발음을 우리식으로 읽고 적고( 공자 -> 공자),

이후는 한자 발음을 중국식으로 읽고 적는 식이다(공자 -> 쿵쯔).

 덕분에, 주윤발이나 장만옥, 장예모 등등 수많은 추억의 인물들은 세상에서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를 외계어로 된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채우고 있다.

그런데 저런 기준이 있다고 해서 100%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충 저런 기준이 있고, 특히 고전 역사의 인물들은 예전 방식대로 하고 있어서

그나마 혼란이 덜했는데... 이 책은 거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의 인물들도 전혀 가리지 않고 모조리 새로운 표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우리가 익히 아는 전국시대의 영정이나 공자, 이사, 상앙 등등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편의를 위해서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는 병행 표기한다는 식으로 혼란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별 의미는 없어 보였다)

 쿵쯔가 어디의 뭐하는 놈이여!!!...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랄까.

 덕분에, 내용을 제대로 볼 생각은 광속이 아니라 워프로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리고,

책은 바로 손에서 놓아 버렸다.


 물론, 난 지금 이런 방식이 내 취향에 안 맞는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지,

이런 방식 자체가 그렇게 가치가 없고 형편없는 방식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도 서문에서 왜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하는 표기법이 있는데도

굳이 일부러 저렇게 다 신식으로 표기를 했는지에 대해 이유를 밝히고 있고,

그 이유가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저 표기법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기준이 납득이 가는 것도 아니고, 시점을 기준으로 이름을 다르게 읽는다는 자체도 웃긴다.

물론, 저런 표기법의 절충을 생각해낸 사람들의 고충을 아예 모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이유들에 납득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

주윤발과 장만옥, 장국영 등과 함께 시간을 달려온 사람의 한사람으로서,

난 그런 신식 표기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신식 표기법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 인물의 이름 표기에 있어서 심각한 괴리를 초래하는 기존 표기법은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단지 난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다.


그래서 난 저 책의 내용이 어떤지조차 파악하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해져 버렸던 것...

 물론, 난 저 책의 저자나 내용에 대해서 폄하하거나 나쁘게 말할 의도는 전혀 없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는 게 이상한 거고...

난 어디까지나 그냥 저 방식 자체가 내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저런 개선 방식이 정말로 개선인가...라는 궁극적인 의문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다른 언어끼리의 교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 문제는 강자 위주로 돌아가는 현실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동양은 보통 성 + 이름으로 표기한다. 서양은 보통 이름 + 성으로 표기한다.

한국에서 서양 연예인이나 인물을 표기할 때는 그네들 식을 반영한다.

톰 크루즈를 크루즈 톰이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쪽에선 다르다. 박찬호는 찬-호 팍이다.

 국력이 약하면 이렇게 알아서 기어야 하나? 아니면 이런 것도 전통의 사대주의인가?


 중국어 인명과 지명 표기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발음과 표기에 개성과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외국의 것을 표현하려면

제약이 따르고 그에 따라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경우 자국인들의 입장과 편의를 중요시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중국 인물과 지명을 한국인의 입장과 편의를 무시하고

무조건 원어에 가깝게 한답시고 생노력하는 게 과연 그럴싸한 것일까.


 암튼 평소 저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였기에...

 역사책에서 난데없이 쿵쯔가 튀어 나오니 잠시 눈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랄까.

 점점 세상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난 저런 방식 자체가 무조건 부당하고,

그래서 저 책과 저자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궁극적으로 외국어 표기를 원어에 가깝게...라는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은 과도기라 인정하고 저런 노력들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런 과도기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노인네(^^;;;)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싫다는 것이다)
 








*** 중요 수정 사항 ***

혹시나해서 좀 더 둘러 본 결과, 작가의 말과 달리

실제 책 내용에선 모든 경우에 저런 발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책들보다 더 많은 부분에 저런 발음을 사용하고 있을 뿐,

결과적으로 이 책의 표기는 오히려 더 혼란을 주며 헷갈리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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