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천하의 쪼다인가, 천하의 영웅인가! 유방에 대한 잡설 - 초한지

베리알 2011. 12. 27. 22:52


이름을 말하기도 영 껄끄러운 중국 인물 중 하나인 유방... ^^;;;

(중국 역사에 보면 의외로 이렇게 이름이 껄끄러운 인물들이 종종 나온다)


 초한지에서 항우와 함께 두 축을 이루는 인물로,

패왕이라 자부하던 항우를 물리치고 서양의 로마에 비견될 동양의 한나라를 세운,

설명이 필요없이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흔히 알려진 역사의 인물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되거나,

혹은 특정한 부분만 부풀려져 단면으로만 알려지고 그게 상식처럼 굳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은 뭐 거의 대부분 그렇다), 유방은 그럼 어떨까.


 유방은 뭐 천하의 쪼다인데 인덕이 있어서 사람들을 잘 다루고

그로 인해 성공한 무능력자...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혹은 (언제부턴가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 유닛을 묘사하는 흔한 방법 중 하나인) 현실 감각도 없고

심지어 바보처럼 보이긴 해도 번뜩이는 하늘의 도움으로 차곡차곡 퀘스트를 달성해 가는,

좋게 말해 그릇이 큰 인물이다...라는 정도랄까.


 나도 아주 옛날, 초한지 정도를 읽었던 때에는 유방이란 인물에 대해 그렇게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냥 되게 운 좋은 놈이네...라는 정도? 그후로도 동시대의 항우나 한신, 장량 등은

어디서도 안 빠지는 단골 메뉴인데 비해서 유방이란 인물은 어디서도 언급조차 잘 안 되는,

승자이고 한나라의 창시자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듣보잡이나 쩌리 내지 투명인간 취급...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초한지로 인물을 판단한다는 건,

삼국지연의만 가지고 삼국지의 인물들을 판단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초한지라는 건 역사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역사 소설...

원래 초한연의 등으로 불리우는 픽션이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픽션이 득세하게 된 점이나, 주연인 유씨들의 모습을 보면 삼국지하고 통하는 부분이 많다...)


 내가 유방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 있도록 만든 계기는,

90년대에 저 유명한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을 본 덕분이다.

 여기서 초한지 부분에 나온 유방 이야기를 보고 그런 게 아니라,

초한지 시대를 지나 훨씬 뒤의 시대인 남북조시대에 보면 후조의 석륵 부분에서

나오는 이런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갈족의 석륵은 정치수완이 뛰어났는데(실제로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석륵이 옆의 신하들을 놓고 얘기를 한다.


석륵 : 나는 역대 황제 중 누구와 비교될까?

신하 : 고조 유방과 맞먹겠지요!

석륵 : 개수작 마라! 나는 고조를 만난다면 즉시 천하를 내어드리고,

그 앞에서 종노릇을 해야 마땅할 몸이다.

신하 : 머쓱...


 쪼다에 가까운 유방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니까

벙찐 괴리감이 들었었다. 그 쪼다 유방하고 비교되는데 어째서?

 이 정도면 겸손이 아니라, 거의 자학 아닌가???


 그리하여 진시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유방에 대해서도 찾아 보게 되었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진시황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자연히 유방과 항우 시대에도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긴 하다. ^^) 헐~ 정말 이 유방이란 인물은 볼수록 보통이 아니었다.




< 이미지 출처 : www.daum.net >

일단 뭐 그냥 가기 뭐하니 마침 곧 개봉하는 초한지 영화 스틸 컷... ^^



흔히 알려진, 또는 흔히 각인되어 있는 유방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포스!

이게 무슨 (그 쪼다) 유방이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있는데...

사실은 이쪽이 더 유방의 이미지에 가깝다.



역발산 기개세의 주인공인 항우치고는 뭔가 비리해 보인다?

...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일테지만, 실상 항우라는 캐릭터라면 이 정도가 딱 좋다.

 항우는 흔히 우락부락한 외모 내지는 멀쩡한 장군들도 보고 오줌 지릴 정도로 무서운 인물처럼

그려지는 게 보통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항우가 그런 괴물의 외모라는 걸 인정할만한 믿을만한 역사적 증거도 없는데다가,

픽션인 초한지와 달리 실제의 역사서들에 나오는 항우의 이야기를 보면 전형적인 도련님이다.

 (그리고 그것이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이유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괴물급 이미지보다는,

차라리 덩치는 좀 있더라도 곱상한 외모로 그려놓으면 그게 더 항우 같을 것 같다. ^^;;;



...하지만 나름 주연 캐스팅은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저런 SF스러운 무기를 휘두르는 항우를 보니 이 영화 왜인지 불안해진다.

금방이라도 분리 변신이라도 할 것 같은데... -.-;;;



일반적으로 알려진 쪼다 이미지와 실제의 유방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모습이 어울리는 건 아니다.

실제의 유방은 여러 면에서 쪼다라고 안 할 수가(또는 쪼다처럼 보일 수 밖에) 없으니... ^^;;;



영화 초한지 이야기가 언급된 만큼, 빠지면 안될 유역비...

이 사진 보니까, 오늘은 자기 전에 천녀유혼 한번 땡겨 줘야 할 것 같다. ^^;;;





 그럼 본격적인 유방 이야기...


-최고의 전략가로 누구나 인정하는 군신 한신,

유방이 보잘 것 없을 때부터 항우를 무찌를 때까지 그 엄청난 보급을 담당한 군수천재 소하,

유방을 위해 거시적인 큰 그림을 그려주고 계속 지원한 모사 장량 등등...

 누구 하나 빠져도(특히 한신!) 유방의 승리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초A클래스인 부하들은,

그래서 무능한 유방을 더욱초라하게 만든다.


-유방은 봉기한 후,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부하들의 조언을 실행해서 어렵게 어렵게

승기를 이어왔을 뿐(물론, 이렇게 타인의 조언이나 부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어 과감히 실행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방의 대단함이 드러난다)이고,

항우와의 대결이 시작된 후로는 사실상 전패를 기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전략을 세우는 능력도 없고 군대를 지휘할 능력도 없으며 개인의 무력 역시 없는 인물이다.

보급 역시 애초부터 유방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인물... ^^;;;

 그야말로, 무능의 종합선물셋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방의 승리의 기록들은 나중에 황제가 된 후, 반란군을 때려 잡은 성과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항우와의 여러 전투에서 유방 측의 승리는 오로지 한신이 기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신을 보고 항우와의 싸움에서 내리 지다가 마지막 한방으로 역전했다...라는 식으로

한신을 폄하하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는데, 택도 없는 소리다.

 유방 측의 연이은 패배는 유방이 이끌던 군의 이야기지, 한신은 자신의 임무를 맡아서

충실하게 실행중이었다. 항우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항우가 누구인가? 중국 역사에서 최강의 장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인정할 정도의 진정한 패왕!

 이 시대 싸움 기록을 보면 그야말로 후덜덜하다.

 항우를 상대하는 쪽에서는 항우를 어떻게 물리칠까를 생각하며 전략을 짜는 게 아니라,

항우가 없는 쪽을 찔러서 항우를 유인하고 그 빈자리를 먹어간다는 전략을 짜고 있을 정도로,

항우의 부대와 정면으로 붙기는 커녕, 항우의 부대와 조우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항우의 맞딱뜨리면 그대로 패배... 항우가 온다면 무조건 튀는 게 사실상의 전술인 상황!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패왕 항우가 두려워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신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신은 별볼일 없던 시절의 한신이 아니다. ^^)


-항우와 정면으로 붙는다는 자체를 그 누구도 아예 생각조차 안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항우의 부대와 붙어서 패배를 면할 수 있을 정도의 싸움을 구사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한신이다(고작 해야 패배를 면할 정도로 버티는 게 대수냐...라는 분들은,

초패왕 항우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런 국지적인 전투뿐 아니라, 중국 전체를 그리는 큰 차원의 전략을 구사했고

그래서 실제로 그 잘난 항우가 포섭하려고 시도를 하고, 심지어 두려워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단 한 사람의 주인공이 바로 한신이다.

 천하에 당할 자가 없다는 패왕 항우조차 두려워하는 잘난 부하를 둔 유방의 심정은 어땠을까?


-항우와의 길고 긴 전쟁 중에 유방이 크게 깨지자, 유방은 한신에게로 쥐도 새도 모르게 달려 가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잘 훈련된 한신의 군대를 빼앗고는 한신에게 알아서 병사들 네가 모아서

계속 싸우라며 다시 전장으로 내모는 걸 보면 유방이 한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난다.

 심지어,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한신의 군대를 빼앗는 것이었으니...

 유방과 한신의 군사적 역량이 넘사벽이었음은 물론, 유방이 한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런 무능한 유방은 패왕 항우를 이겼으니...

승리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또는 항우가 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개인적으로는 이 두가지로 압축된다고 생각한다.

 유방은 (무서울 정도로) 현실주의자였다는 것,

 항우는 (전형적인) 도련님이었다는 것...


-유방이 인덕이 있어 부하들이 몰려 들고...어쩌고 하는건 거의 사실무근이다.

역사에 이름난 승리의 영웅들은 대부분 지나칠 정도의 현실주의자인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역사에 이름난 패배의 영웅들은 대부분 지나칠 정도의 이상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유방은 그중에서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유비가 조조에게서 도망치다가 처자식 버리고 갔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유방 역시 그렇다. 자신이 천하를 잡겠다는 목적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는 아오안

(물론, 목적 달성을 위해서 Show를 할 수는 있다)인 것은 기본이요, 심지어 혈육도 휴지 버리듯

내팽개칠 수 있는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근성... 성공한 영웅들은 대개 이런 이상한(?) 인종들이다.

 유비는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유비의 상대였던 조조가 유비보다 훨씬 더 무서운 현실주의자였으니까!

 유방 vs 항우...는, 아무래도 조조 vs 원소...를 떠올리게 한다.

 승리자들은 열세의 세력에서 체면이고 뭐고도 없이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달려 들었지만,

패배자들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세력을 가지고서도 체면이고 뭐고 방심하고 허세 부리고 현실을 모른 채

자기 좋을대로만 하다가 망했다는 점에서 꽤나 비슷하다.

 역시 도련님은 안 된다. ^^;;;


-유방의 명령으로 다른 나라들을 먹어 대던 한신은,

위기에 빠진 유방을 도우러 달려오긴커녕 자기를 제나라의 임시왕으로라도 임명해야

이쪽 평정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요구를 하는데... 당연히 열불이 난 유방이 한신을 잡겠다고

날뛰는데 장량이 옆에서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하자, 두말없이 그 말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호탕하게 기왕 왕을 하려면 진짜 왕을 해야지 임시왕이 뭐냐며 정식으로 왕으로 임명한다.

 한신과 유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한신이 토사구팽 당한 것은 유방 때문인 까닭이 크지만(사실 뭐, 한신이 아무리 처신을 잘했어도

100% 이상의 확률로 유방에게 죽었을 것이다), 좀 더 들여다 보면 한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중요한 순간에 저런 식으로 유방에게 미움 받을 짓만 해놓으니, 유방이 당장은 토끼(그것도 사상 최강의

괴물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으니 웃으며 넘어가지만, 쪼잔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잔인찌질이 유방은 이런 일들을 마음 속 깊이 장부에 기록해 두었던 것...

 개인적인 생각으로, 중국 역사의 영웅들 중에서 "정치력" 하나만 놓고 본다면,

유방은 능력치의 최대치인 100을 넘어서는 수치를 부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한신 같은 경우는 "정치력"에서 평균 이하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신이 어디서도 제대로 등용되지 못 하고, 심지어 유방 밑에서도 도망치려던 것이 대표적인 예...

 

-유방의 일화들을 보면 유방의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난다.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싫은 소리도 군말없이 감사히 받아 들이고(속으로 칼을 갈 지언정...)

미적대지 않고 딱딱 실천한다. 유방의 성향이 놀기 좋아하고 세상에서 자기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겉저리로 여기는 이기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위해 그야말로 무슨 짓이든 다 하니...

 항우는 전혀 다르다. 평소에는 인정이 많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부하들을 아꼈다지만,

포상에 인색하고 자기 욕심만 챙기던 것을 보면 진정으로 부하들을 아꼈다기보단

높은 신분인 사람이 아랫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위에 빠져 있던 것뿐인가 싶다.

 또한, 아무리 자기가 잘났다고는 해도 남의 조언은 다 개무시...

 여러모로 참 항우와 유방은 뚜렷하게 비교가 된다.


-유방은 사실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한 중국 역사에서도 유방만큼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나라를 세우고 황제까지 된 사례는 없다.

 유방은 정말 내세울 게 없는 골수 촌놈이다.

 그의 다른 이름, 혹은 자라고 알려졌던 유계라는 이름은 그저 유씨네의 막내...라는 의미였을만큼,

기본적인 이름조차 없던 별볼일 없는 출생에다가, 그의 부모인 아버지 태공이나 어머니 유온이란

부모들의 이름조차 사실은 이름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의 호칭, 어머니의 호칭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때문에 유방의 출생을 미화하려고 가져다 붙인 일화들은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이거 소설을 써도 너무 판타지를 썼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뿐이다.

 심지어, 어머니가 인간으로 변한 용과 관계를 해서 나왔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니 뭐... ^^;;;


-유방의 이야기 내내 빠지지 않는게 무례하고, 잔인하고, 놀기 좋아하고, 여자 밝히고 등등...

이런 것들뿐이라는 걸 봐도 유방이 초한지 등에서 잘 포장된 것처럼 멀쩡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암튼 이름도 없고 출생도 내세울 게 없는 무식한 촌나부랭이가 최강의 패왕을 꺾고,

새나라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거... 그 과정도 파란만장했다는 것만 봐도,

유방이 쪼다나 핫바지이기만 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며,

진정 천명을 받은 The one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초한지의 후반을 장식하는 무시무시한 숙청의 이야기야말로,

배운 것도 없던 촌놈 유방이 여느 준비된 제왕 못지 않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제후로 임명된 유방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유방보다 잘난 놈들이고,

그동안 항우와의 싸움에서 형세가 변하는 것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던 놈들이니,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이 그냥 황제가 된 유방이 불안하지 않은 게 이상하겠다.

 사실, 새나라 건국이나 새왕조가 들어서면 어디서나 제일 먼저 하는 건 숙청 작업으로,

그동안 열심히 일해 준 공신들을 싹 정리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거 제대로 안 하면

왕조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예를 들어 조선의 세종대왕... 세종대왕이 대단한 성군임은 분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종대왕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신나게

피바람을 일으켜 정리해준 덕분이 크다). 토사구팽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까지 나왔다고 해서,

유방이 특출나게 대단한 숙청을 한것도 아니다. 그 정도는 그 세계에서는 그저 기본...


-홍문연 영화 이야기도 나오듯, 홍문연 이야기는 초한지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중 하나다.

죽음의 공포에서 살걸음 걷듯 살길을 찾아 노력하는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그동안의 그런 인식에 비해, 실제의 현실은 달랐으리라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위에서 쭈욱 말했던 것처럼, 유방은 결코 시덥지 않은 도박을 할 인물도 아니고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목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할 인물은 더욱 더 아니다.

때문에, 홍문연에 유방이 참석했다는 것은 유방 본인이 살아 나올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간 것이지,

그렇게 죽을지 살지를 놓고 목숨을 건 모험을 했을리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당시에 항우가 유방을 쉽게 죽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방은 미리 함양에 들어와 여러 포퓰리즘 정책(^^;;;)으로 그곳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던데다가,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의 병사들 수십만(다소 과장된 수치이긴 하겠지만...)을 엊그제 생매장한

상황... 항우가 생매장한 병사들의 가족들이 눈에서 피눈물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땅이 바로 함양!

 상황을 보면, 여기서 항우가 유방을 죽이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모험이랄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초한지나 혹은 초한지 인용 2차 저작들이 악전고투하는 항우와,

그에 대비해 쉽게 함양으로 들어가는 유방...으로 그리고 있는데,

실제로는 유방도 내내 싸움을 해가며 어렵게 어렵게 함양까지 들어간 것이다.

 단지, 항우에 비해서 빨랐을 뿐...


-적지 않은 초한지 혹은 초한지 인용 2차 저작들은 그런 유방을 지나치게 미화하는데...

사기 등 역사서에 등장하는 유방의 여러 나쁜 모습들은 삭제하거나 미화하거나 대체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싸움에서 크게 깨지니까, 한신에게로 와서 한신의 군대를 빼앗고

한신 보고 알아서 병사들 징발해 군대 만들라는 유방의 이야기...

 60권짜리 전략삼국지 만화로 유명한, 옛날에 본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초한지에서는

이 부분을 일이 잘 안 풀리니까 제대로 경계도 안 서고 놀고 자는 오합지졸이 된 한신의

부대에 찾아온 유방이 한신을 질책하고 반성하라고 자중시키는 것처럼  묘사했었다.

(기억이 좀 틀릴 수도... ^^;;;) 완전히 유방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본인의 재구성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삼국지연의가 사실은 일본의 일본식 판본이듯이,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보여준

이 부분도 일본의 어떤 일본식 초한지 판본에서 따온 건지 본인의 재구성인지는 모른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통 항우가 세운 꼭두각시로 알려진 의제이지만,

천천히 들여다 보면 의외로 이 의제도 항우가 하라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항우가 굳이 의제를 죽인 걸 봐도 그렇고...


-암튼 유방은 무식하고 출생도 별 거 없고 성격 더럽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고,

난세에서 헤쳐나갈 군사적 능력도 없는 진정 무능력자였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뛰어난 정치력과 현실판단 능력이 있었으니...

그걸로 결국 최강의 패왕까지 물리치고 황제에 올랐던 것이다.

 시시한 쪼다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

(어떻게 보면 이런 유방이란 캐릭터는 이상적인 지도자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능력없는데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고는 해도,

능력있으면서 부지런한 상사 역시 좋은 건 아니라는데-이게 항우? ^^;;;-,

상사나 CEO로서 정말 필요한 것은 언제나 조언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그 중에서 진짜 필요한 조언을 가려내는 매의 눈과 판단력,

자기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기보다 부하들의 장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시하고 지원하고 등등...)


-홍문연 영화에서 과연 유방과 항우를 어떻게 그릴지 궁금해진다.

일단 뭐 유역비도 출연한다니 그것만으로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