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킹덤 열전] 영원한 출생의 비밀, 진시황은 여정인가 영정인가?

베리알 2011. 10. 25. 22:11



킹덤 연재 내용에서 당분간 언급할만한 꺼리가 나오진 않을 것 같고,

요즘에 킹덤이란 작품 자체가 예전만큼의 매력은 아니기도 하고,

킹덤 열전을 계속 하는데 회의를 느끼게 된 여러 일들도 있었던 바,

킹덤 열전이라는 카테고리는 이것으로 일단 멈추고 옛날같이 완전히 조용한 개인 메모장으로

돌아갈까 말까를 생각 중인지라... 그 사이에 우선 굵직한 이야기 하나를 던져 보겠다.

 진시황 이야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레파토리라고 할 수 있고,

킹덤에서 어떻게 등장할지도 기대거리인 여불위 친부설!

 (완전히 새로운내용의 이야기들이라기보단,

이전까지 킹덤 열전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하나로 정리해 보는 느낌?)


 진시황과 여불위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정도는 넘어서지만,

진시황 = 최초천하통일, 분서갱유등 폭군의 대명사...정도까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흥미 위주로 재탄생하거나 개인계발서 등에서 인용된 사기의 내용 정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진시황, 즉 영정은 유명한 상인인 여불위의 아들인 여정으로 알고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이는 사실 역사의 오랜 이야기 꺼리 중의 하나이고,

이 시기를 소재로 한 민간 설화나 연극, 소설 등 각종 유희에서는 거의 100% 공통된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진시황을 공격하려는 목적을 가진 소수의 역사학자들(=유교킹왕짱빠돌이들...

어디서나 언제나 빠돌이들이 문제다)으로 가득 찬 이상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는 이야기다.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대원과 集英社에 있습니다 ]

바로 이 인물이 진시황의 부친으로 소문(^^)이 자자한, 대상인이자 진나라의 승상이었던 여불위...


여불위에 대해선 이전에 조금이나마 다룬 적이 있으니 더 이상의 얘기는 생략한다. ^^



킹덤에선 처음에 영정의 후원자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상은 영정이고 왕족이고 다 쓸어 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가졌다고

영정과 그 참모들에게 평가받는 인물로 킹덤에선 나온다.


-실제로는 영정이나 성교가 죽는다고 해도 왕족이 전멸할 수도 없고

(모든 왕족이 함양에 전부 모여 있는 것은 아니다. ^^;;;), 여불위가 왕으로 추대된다는 것도

진나라 시스템 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라, 여불위가 이런 발상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서, 여불위가 이런 일을 벌이려면 스스로 진나라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얘기인데,

전국칠웅 중 독보적인 최강국의 승상에 있는 자가, 그 자리를 위한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실상의 자살 행위를 할 가능성은...? ^^)



심지어 영정을 죽이려고 암살자들을 보내는 걸 유희 정도로 생각할 정도의 인물인데,

이런 인물이 정말 부친일까? ^^;;;


-사실, 킹덤에서 이런 여불위가 영정의 친부라고 해도 이건 그냥 소년지의 패턴이랄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소년지에선 자식을 강하게 키운다는 목적이나 혹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자식의 목숨 같은건 헌신짝처럼 여기거나 혹은 생판 남보다 못 하게 대하는 이상한(?) 부모들이

흔하게 등장하고 있으니까.



옛날에 여불위과 놀아나던 사이였던 영정의 모친, 조희...




많은 사서에 이들의 불륜(!)이 기록되어 있다는데...


-사실, 이 부분은 지금의 관점이나 혹은 유교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안 되는 부분이다.

킹덤의 전국 시대는 여성에게 과도한 정절과 족쇄를 채우던 유교가 천하를 지배하기 훨씬 전이기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교적인 위선의 성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었다.

 즉, 왕비가 애인 사귄다고(그것도 과부 처지!) 안 될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물론, 대놓고 이게 내 애인이다!...라고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



엄청난 야심에 가득찬 여불위!!!


 킹덤에서 영정의 출생의 비밀을 다룰지, 다룬다면 어떻게 다룰지는 사실 현재까지만 보면

짐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불위의 여태까지의 태도나 대사 등을 보면 영정을 반드시 죽이고 왕위를 자기 손으로 넣겠다고

볼 수만은 없는, 생각하기에 따라선 모호할 수 있도록 드러내고 있기 때문...

 위의 대사도 여불위 본인 손으로 왕위를 손에 넣겠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나라에 걸맞도록 자란 영정이 왕위에 앉는다면 그가 자기 아들인만큼,

곧 여불위 자신이 일국의 주인이 된다고 주석을 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영정을 바라보는 이런 눈빛이나 대사도 제거해야할 대상의 성장을 보는 상황으로도,

(자식의 성장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 온) 자기 자식의 성장을 보는 상황으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여불위와 영정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일단 차치하고,

과연 킹덤에서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이상적인 군주인 영정이 망가지는 계기로, 이 출생의 비밀이 참 쓸만하기도 할텐데 말입니다. ^^)



여불위가 상국이 된 틈을 타서, 승상 자리 하나를 얻어 권력을 잡으러 간다는 영정...


-여담으로, 실제의 진나라가 강력해진 이유 중의 하나가 왕이 인사권을 확실히 휘두를 수

있었던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 사람 하나 못 심어서 쩔쩔 매는 킹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른 열국들에선 권신들의 세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 해 나라가 쪼개지거나,

혹은 왕조가 교체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지만, 진나라는 권신들의 세력이 너무 커지기 전에

미리 미리 잘라 버렸기에 그런 쓸데 없는 일에 국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물론, 킹덤에서처럼은 아니었겠지만 영정은 어느 시절까지는 완벽한 권력을 휘두르진 못 했을 것이다.

초월적인 공신이라 할 수 있었던 여불위에다가, 외척 세력을 대표하는 창평군 등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테고 이들을 정리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제약이 있었겠다.

 어쩌면 진시황이 그렇게 한비자의 저서에 심취하고 황제라는 존재를 대단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은

그런 시절의 기억에 대한 반발일 수도...?





[ 그러면 진시황은 영정일까, 여정일까? ]


-여정이라 보는 이유로는 우선 역사가의 서술을 들 수 있겠다.

일단, 반고가 쓴 한서에는 아예 영정을 여정으로 대놓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반고는 지독한 유교빠돌이로서 진나라나 진시황에 대해선 객관적인 진술을 하기는커녕,

깎아내리지 못 해 안달이 났다고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한서의 이 기록을 근거로 삼기는 무리다.

 쟁쟁한(?) 역사가의 기록을 함부로 개무시해도 되는거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된다.

유교빠돌이들로 가득한 중국 역사가들의 역사서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짜증과 불쾌감이 드는 건 물론,

멀쩡한 사실을 빼거나 각색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게다가, 무슨 일이든 간에 유교식 가르침으로 포장하는 그 유치찬란함이란...

그래서 맹목적인 맹신은 절대 금물, 취사선택과 유교 포장 제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뭐, 반고의 한서를 근거로 영정을 여정으로 봐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말리진 않겠다. ^^


-반고의 한서는 그냥 훼이크일 뿐, 이 건에 관련한 가장 유명한 역사가의 서술은 역시 사마천의 사기다.

하지만, 그냥 사기에서 여불위의 자식이라고 했다고만 알려져 있지, 실제로 사기의 기술을 제대로 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점은 중요하다.


-사마천은 사기 본기의 진시황 본기에 "진시황제는 장양왕의 아들이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어라라, 시작부터 삐긋? ^^;;;

 여불위 친부설을 위해 사마천의 사기에서 인용되는 부분은 사실 본기가 아니라, 열전이다.

 여불위 열전에 보면 여불위가 자신의 첩이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고 이 여자를 자초가 달라고 하자

아이를 가진 몸인 것을 숨기고 바쳤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어느 장단이 맞는 것일까?


-사기 열전은 사기의 백미라 불리우지만, 역사적인 자료로서의 신빙성은 당연 본기보다 떨어진다.

때문에, 같은 내용을 본기와 열전이 다르게 기술한다면 아무래도 본기에 비중을 두는 게 보통이다.

(물론, 이건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 중에는 같은 사건을 놓고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경우, 이쪽에는 이 이야기를 쓰고 저쪽에는 저 이야기를 쓰는 식으로 그 다른 이야기들을 다 서술하여 그것을 보는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방식이 있기 때문...)


-게다가, 이 부분에 있어서 사기의 기술은 모순이랄까 사마천의 장난이랄까 하는 부분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자초의 부인이 된 조희... 조희에 대한 설명은 그때 그때 다르다.

 본기에선 여불위의 첩이었던 조희를 얻어서 영정을 나았다고만 되어 있지, 영정이 누구의 씨인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바로 앞에서 장양왕의 아들이라고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

 열전에선 처음에는 한단의 여러 여불위 첩 중에서 외모 좋고 춤 잘 추는 여자라고 설명하지만,

몇문장 뒤에선 자초의 아내는 조나라 부호의 딸이므로 (한단 포위에서 자초가 도망치고

조희와 영정만 남게 되자 조나라에서 이들을 죽이려고 했던 때) 숨을 수 있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무희와 부호의 딸은 전혀 다르다.

 즉, 이것은 사기의 기록을 누군가 고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거나, 아니면 사마천이

이 재미있는 이야기(여불위와 영정의 부자설은 전통적으로 인기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를

그냥 사장시키기에는 아까워 삽입하되, 사실 판단을 위한 장치들을 삽입했을 수도 있다는 것...


-영정의 출생에 있어서도, 영정은 대기를 채우고 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은 10달을 채웠다는 의미다(혹은 12달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영정의 부친이 여불위일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조희가 여불위의 아이를 밴 채 자초에게 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임신 3개월 정도의 시기부터

산달을 계산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다면 십중팔구 영정은 칠삭동이 혹은 그 이하로 태어났을테고,

대기를 채웠다는 표현을 사용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생리가 없는 것을 보고 생리 불순의 가능성은 절대 배제한 채 바로 임신이라고 확신했다고 해도

역시 임신 1-2개월 후의 이야기...

 자초가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면 그게 이상하고,

설사 자초가 바보라고 해도 그 수행원들이 모두 바보일 가능성은 없다. 당연하지 않나? ^^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사기의 기록만으로도 영정이 여불위의 자식일 가능성이

의외로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더 낮춰주는 책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전국책이다!

 전국책은 사료라기보단 흥미위주의 민담이나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에 가깝기에,

실제 역사에 비해서 흥미진진한 내용들이(물론, 대체로 뻥~ ^^) 가득하다.

 그런데! 이 전국책에는 정작 여불위 친부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여불위 친부설은 지금까지도 인기 있는 레파토리일 정도니,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가

전국책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불위 친부설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춘신군 친부설 이야기는 전국책에 끈적하게 등장한다)


-또한, 예전에 킹덤 열전 여불위 편이나 킹덤 열전 춘신군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이야기 자체는 이미 사기의 춘신군 열전에서 나온 이야기의 재탕이란 점도,

여불위 친부설의 가능성을 더 낮춰준다.

(춘신군 열전의 이야기 자체도 날조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상과 같이 보면,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사기만으로도 여불위 친부설의 가능성은 낮으며,

다른 책들까지 고려하면 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는 것...

 그럼 여불위 친부설은 실제 역사가 아닌 날조된 이야기일 가능성은 반대로 쑥쑥 높아진다는 것이다.

누가 이 이야길 날조했을까?

 이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다.


-우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유학자들의 만행이다.

진나라를 계승한 전한 때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굳이 나올 필요가 없었지만,

유학이 국교로 지정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유학자들에 있어선 진나라와 진시황은 어떻게든 갉아 먹어야 하는 대상이었기에,

이 시기 유학자들의 열심열심 노력으로 진나라와 진시황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이

과장되거나 날조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유교 입장에서 진시황이 여정이 되면 얻는 이익(?)은 무지막지하다.

 진나라는 정통성도 없게 되고, 진시황은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중의 패륜아가 되는 등등...

헐뜯고 싶어하는 유학자들을 만족시키는 만병통치약이랄까. -.-;;;

(유학자들은 왜 진나라와 진시황을 싫어했을까?

전통이니 정통성이니 명분이니 여러 이유들이 많겠지만,

한가지만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유가와 법가는 상극인 탓이 크다. 

유교는 철저한 기득권 옹호가 기본이다. 사람들에게 위치에 맞는 역할을 강조하는 건

인간의 도리니 뭐니 핑계를 붙이고 있을 뿐, 실상은 철저한 계급제를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계급제는 당연히 기득권을 위한 제도다.

 유교의 모든 것은 기득권 수호를 목표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앙이 변법을 시행할 때 반대한다고 하면서 백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게 사실상 유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이 이상향이 아닌 이상,

계속 개선하고 보완해 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유교 시각에서 보면 이런건 안 된다. 왜?

기득권층이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을 뭐하러 개선하냐는 게 유교 시각의 본질인 것이다.

 유교적 시각만이 거의 절대 진리였던 중국 역사가들에게 사정없이 매도당한 인물들 중에는,

개혁가가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개혁은 어떤 식으로든 기득권을 침범하는 것...

그런 짓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유교는 보수적인 정도가 아니라, 그냥 수구킹왕짱인 것 같다)


-유학자들만이 후보인 것은 아니다.

후보 중에는 한나라의 고조 유방의 부인이 여태후도 있다.

 여태후는 알려져 있다시피 유씨들의 나라라는 한나라를 여씨들의 나라로 만들려 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진시황이 영정이 아니라 여씨였던만큼,

유씨가 아닌 여씨가 이어 가야 정당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날조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후보는 그외에도 더 있다.

영정에 의해 내쳐지고 사실상 죽임을 당한 여불위, 그 여불위의 부하와 신하들이

여불위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영정에게 이런 누명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비슷한 후보로, 진나라에게 멸망당한 육국의 사람들(그중에서도 초나라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도 한다)이 복수심에 차서 이런 이야기를 퍼뜨렸을 거라는 것...


-이런 여러 요소들은 조합에 따라 더 그럴싸해 보이기도,

또는 가능성이 낮아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중요한 점은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여불위 친부설은 가능성이 계속 낮아진다는 것...


-사서를 넘어서 그냥 생각해 봐도 여불위 친부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별 볼 일 없는 곳에서 씨받이 하나 들이는데도 엄청난 검증을 거치는 데,

중국의 전국칠웅의 최강 진나라에서 왕자의 마누라를 들이는데 그 정도 확인조차 안 했을까?

 지금에 비하면 전국시대가 미개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겠지만,

일반적인 선입견을 넘어서는 발전이 있던 시대인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그 시절 출토된 유물들을 보면 전국시대에 이미 임신과 출산의 원리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


-앞으로 다른 사료나 유물의 출토로, 위의 이야기들은 수정되거나 폐지되거나 할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여불위 친부설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들은 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이야 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점은 여불위 친부설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얘기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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