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은하영웅전설과 아루스란 전기의 사이의 현대전 - 일곱 도시 이야기

베리알 2011. 9. 8. 22:20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라고 하면 이상할까? ^^;;;

 그 유명한 은하영웅전설, 즉 은영전과 아루스란 전기 등의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하나가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제목이 일곱 도시 이야기...

 혹시나 다나카 요시키가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왔나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작품은 번역자가 후기에서 얘기하고 있듯이, 은영전의 집필 마무리 즈음에서,

아루스란 전기 초반의 집필 시기에 씌여진 연작 단편을 모은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초미래를 배경으로 한 은영전과 초과거(판타지라고는 해도 일단 과거 아닌가? ^^;;;)를

배경으로 한 아루스란 전기의 사이에서 나온 시기적인 태생에 어울리게, 이 작품은 비교적 현대,

기껏해야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상 2190년인데, 작품의 스토리에서 미래의 기술로 제약을 가한 설정 덕분에,

실제로는 세계대전의 근대전이나 현대전을 연상케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순서가 이걸로 맞아 들어가는 것인가?

 (창룡전은 논외로 한다. ^^;;;)




 

< 이미지 출처 : www.kyobobook.co.kr >


  작품의 배경은 근미래... (서기 2100년에 못 미쳐 사건이 시작되는 걸 보면,

2011년인 지금에서 이 작품을 보는 느낌은 2000년 이전에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하긴, 그런 세기말적인 작품들대로라면 이미 지구는 몇번이고 멸망하고

몇번이고 기상천외한 위기들을 겪었겠지만... ^^;;;)

 지구는 대전도라는 재앙이 일어나 자전축이 심하게 기울어져 버려,

이로 인해 기존의 자연계는 물론 인류의 문명이란 게 박살이 난 상황...

이 재앙을 피한 것은 달에 건설된 월면도시에 있던 소수의 사람들 뿐이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엉망이 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리가 된

(이 대재앙으로 인해 특히 빈곤층이 증가하던 인구 과잉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설정...

물론, 어디까지나 월면도시의 사람들 시각에서의 얘기겠지만) 지구 위에서 재건 작업을 개시,

지구에는 일곱 개의 계획 도시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월면도시인들은 올림포스 시스템이란 것을 설치,

일정 질량과 속도 이상의 물체가 5백 미터 상공에 이르면 자동 요격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지구인들은 하늘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136년. 갑자기 달에서의 연락이 끊기고 나중에서야 셔틀 하나가 지구로

불시착하는데, 그곳에서 발견된 자료에는 달에 떨어진 운석에서 미지의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이 바이러스가 창궐해 달을 전멸시키게 되었다는 것...

 이를 믿던 안 믿던 간에 지구에는 이제 달의 간섭이 사라져, 지구의 일곱 도시들은 인류가

예전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처럼 서로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대립하고 경쟁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발단이다.



 자전축이 기울어진다는 재앙은 일본에서 나온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지진이라는 재앙과 친숙하게(?) 살아온 경험이 반영된 것일까.

 이 책의 재미는 미묘하다.

 일단 달랑 한권짜리라 분량에서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누가 봐도 다나카 요시키스러운(?) 장편 소설의 달랑 첫편을 본 느낌이기 때문이다.

 일곱 도시의 주요 출연진들을 등장시키고 어느 정도 설명을 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데,

대전도의 발생 원인과 월면도시인들의 관계, 올림포스 시스템의 의의나

일곱 도시가 만들어진 이유, 월면 도시 전멸의 진실 등등... 점차 이야기가 풀어 보일

목차들만 쭈욱 늘어 놓고는 그냥 끝...인지라, 실컷 보고 나면 뭥미!?...소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은영전이 우주삼국지라고 불리우던 건 삼국지의 에피소드들을 차용해서가 아니라,

우주를 배경으로 삼국지 못지 않은 은영전다운 지략 대결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인데,

이 작품에선 대놓고 삼국지의 에피소드나 고대 중국의 이야기들을 차용하고 있다.

 아마, 아는 분들은 그 부분들을 보면서 뭥미나 피식...할지도 모르겠다.

 

 암튼 긴 분량의 시리즈 소설의 발단...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달랑 1권으로서 마무리

(은영전처럼 두어개의 거대 세력의 대립도 아니고, 비등비등한 일곱 개의 세력의 대립이기에

주요 인물들 설명만으로도 1권이 한참 모자란다. 그냥 등장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할 정도...)이고,

발단으로서 신나게 뿌려둔 설정 떡밥들도 그대로 다 공중으로...

 여러모로 단점이 많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인 아루스란 전기나 초미래 배경인 은영전에 비해서 전략이나 전투가 보다 더

가깝게 다가온다는 점은 이 작품의 매력이다(역시나 창룡전은 논외다. ^^;;;).

 일곱 개의 세력이란 점에서 은영전보다는 아루스란 전기의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전혀 다르다.

아루스란 전기는 거대 세력이 이미 존재하고 차등한 세력들이 존재하는 이야기지만,

이 일곱 도시는 월면도시인들에 의해 계획된 고만고만한 균형의 일곱 도시가 존재하는 이야기라,

이야기의 전개도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기껏해야 은하제국과 동맹군이 대립하는 것과 달리, 민주주의의 공화정 시스템을 사용하는

일곱개의 도시가 있다는 설정이니만큼, 작가의 신랄함이 더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아루스란 전기나 은영전에 비해서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아무 생각없이 영웅이 나타나 다 해주실거야~라는 주민들의 모습이나,

독재자의 자식이 설치는 모습, 독재자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일들 등등...

 일본 사람이 쓴 일본 소설이지만,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더 깊숙히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은영전이 새롭게 발매된다는 소식이 눈앞에 있고,

민주주의에서 탄생한 합법적 독재가 눈앞에 아른 거리고 있고,

생각없이 위정자들에게 휘둘리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이 발행된 것은 여러모로 재미있긴 한 것 같다.













-정가 11,000원...

내 기억으로는 을지서적판 은영전 2권을 사고도 남을 것 같은데? 세월무상...


-어떻게 보면 본 책의 내용보다, 역자의 후기가 더 인상적일 수도 있겠다.

을지서적판 은영전에 대한 이야기나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여러 배경 이야기 등등... 후기가 길지는 않지만 참 알차다. ^^


-을지서적판 하면 역시 옛날 강남역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책으로선 흔치 않게 벽면에 대형 광고까지 때려 넣었었는데, 해적판이라니! ^^;;;


-작품의 탄생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시대착오적인 아이템들의 등장은 여전하다.

초미래의 은영전에서도 기껏해야 서적 VTR이 등장했었는데,

근미래인 이 작품에서도 역시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한다. ^^


-이 작가도 참 아이러니하다.

어떤 작품에서도 언제나 정공을 강조한다.

전쟁의 부당함에 대해 토로하고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보급의 강조나 기본 준비의 강조 등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인공급의 사기 유닛들은 기기묘묘한 계책이나

정공을 벗어난 전략으로 위기를 넘기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하긴, 정석의 강조는 기본일 뿐이지만...


-작가가 실제 군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무능하고 한심한

군인들의 모습은 픽션만은 아니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민주정치의 암초 등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이야기들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어차피 책도 안 읽고 죽을 사람들이야 빨리 죽으면 된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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