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킹덤 열전] - 사실상 진나라의 전국 시대 통일을 확정지은 정복왕, 진소왕

베리알 2011. 1. 19. 11:29

 이번 킹덤 열전의 주인공은 바로 바로 바로... 실제로도 정복왕의 타이틀에 빛나고,

킹덤에서는 육대장군과 끈끈한 교감으로 중화통일을 꿈꿨던 영웅으로 그려졌던 진나라 소양왕,

즉 진소왕이 되겠다.


 육장 자체가 킹덤 작가의 허구이지만, 육장과 사무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끈끈한 관계로 이어져,

소년같은 순수한 눈으로 중화통일을 꿈꾸던 노년의 피터팬...이었던 진소왕.

 과연 진소왕은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대원과 集英社에 있습니다 ]

킹덤의 현재 진왕인 영정의 증조부인 영칙, 그가 바로 진나라의 소양왕이다.

킹덤에서 등장이 많지 않았지만(이미 죽은 인물이니 회상만 등장...)

하나같이 영웅으로 떠받들고 회상 장면에서도 이렇게 그럴싸한 영웅왕처럼 나온다.



소왕이 갖는 위력을 실감하는 장면이다.

영정의 비범함 앞에서 바로 소왕의 환생인가라는 의문을 떠올릴 정도이니,

잘난 장군들이 나오면 바로 백기와 비교 또는 백기를 사용한 수식으로 띄워주는 분위기와 마찬가지.



약 55년의 재위기간 동안 전쟁에 몸을 던져 진나라의 모든 무인들의 충성을 받았던,

전신이라 불리웠다고 나온다.



특히나 일반적인 왕과 달리,

중화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꿈을 쫓는 그런 피터팬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심지어, 육장 규와의 부녀 관계로 부정(父精)을 보여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킹덤 최고의 인기인이라 할 수 있었던 왕기가

완전히 소왕빠로 나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왕에 대한 띄우기가 이뤄졌다랄까.



누가 보면 정말 소왕과 사랑하는 사이였나 싶을 정도로,

완전 소왕빠로 나왔던 왕기.

그렇기에, 이런 천하대장군 왕기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을 소왕이란 인물은

정말 대단했나 보다 싶은 생각을 자동으로 불러 일으켰다.




죽음을 눈앞에 둔 노년의 몸으로도 중화에 대한 사랑을 담은 눈빛이 빛났으며,

열국을 공포로 몰고 간 육장들의 절대적인 충성을 받았고,

기나긴 재위 기간 내내 전쟁에 몸을 던져 전신이라 불리웠전 진소왕.

 과연 이 진소왕은 어떤 왕이었을까?









[ 전국 통일을 사실상 완성 직전까지 진행 했던 정복왕 ]

-킹덤을 보면 55년이란 재위 기간 동안 전신으로 군림했던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알아두어야할 부분들이 있다. 특히, 전신의 이미지와 달리,

기나긴 재위 기간 중 적지 않은 시간을 외척에게 휘둘렸다는 점은 킹덤의 진소왕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나라에서 진혜왕이 죽고 그 아들 진무왕이 뒤를 이었는데,

이 진무왕은 재위 몇년만에 스무살을 좀 넘긴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진무왕은 그 왕호에서처럼(후대에서 역사를 보는 사람들은 왕호를 일반 명사처럼 사용하지만,

실제로 왕호라는 것은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왕이 죽고 난 후에 바쳐지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즉, 왕호를 보면 그 왕의 업적을 살짝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왕조가 바뀌거나 하지 않는한,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후한 법이란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이것을 뒤집으려 한 것이

진시황의 시황제 칭호다. 이것은 그냥 황제 1세 황제 2세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시스템인데,

현실은 달랑 2대에서 끝나 버렸다) 무사들처럼 놀았던 왕인데, 이 왕이 재위에 오른지

얼마 안 있다가 승전을 기뻐하며 부하들과 무쇠 솥을 드는 내기를 하다가...

그만 무릎뼈가 꺾여 죽어버리고 만다(이야기에 따라 급사했다고도 또 중상을 입어

치료 중 죽었다고도 하는데, 그 옛날의 괴력의 장수들끼리 내기를 하며 들던 무쇠솥이니

무게가 어떨지는 상상초월이겠고, 그런 엄청난 무게를 들다가 다리가 부러졌으니 한마디로

무쇠솥에 깔렸던 상황... 아무래도 거의 즉사였겠다. 이때 같이 내기를 했던 맹열이란

부하는 그 보답으로 바로 일족이 다 몰살당하게 된다. -.-;;;)

 문제는 이 무왕의 후사가 없었기에, 진혜왕의 다른 자식들끼리 왕위를 놓고 싸우게 된다.


-여기서 진혜왕의 왕후였던 위나라의 공주의 아들인 영장과,

진혜왕의 후궁이였던 초나라의 공주의 아들인 영칙이 대립하게 되는데...

서로 진왕으로 옹립되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이게 될 찰나,

 초나라의 공주 선태후의 동생이자 이때 진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던 위염은

여기서 영칙을 선택, 영장 일파를 쓸어 버린다. 그리하여 영칙이 진나라의 왕으로

제대로 등극을 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진소왕이다.


-태생부터 외척의 도움으로 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다가,

왕위에 오른 진소왕이 십대 후반에 불과해서 아직관례도 치르지 못하는 상황...

나라는 위염과 선태후를 중심으로 한 초나라계 외척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이 때문에 진소왕이 범수를 기용하고 위염을 쫓아낼 때까지는 사실상

제대로 된 왕권을 휘두르지 못 했다고 봐야 한다. 이때가 무려 소왕 41년...

재위 기간이 55년 즉 일갑자에 가까운 소왕이지만, 그 기간의 상당 부분은

전신으로 활약하기는커녕, 외척에 의해 나라가 좌우되는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위염이 나라를 좌우하던 시기에도 소왕의 전쟁 활약은 계속되었지만,

진소왕이 왕권을 쥐고 활약하는 것과 위염이 있던 시기에 활약하는 것은 전혀 달랐겠다.


-때문에, 진소왕의 업적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위염의 공로로 보기도 한다.

물론, 외척답지 않은 위염의 활약이지만 그 역시 부정적인 측면이 있던 것은 사실이고...


-알려져 있다시피, 위염을 몰아 내고 기용한 범수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쪼잔한 짓거리로 또한 이름을 날렸는데... 심지어 자신의 지위를 열심히 활용하여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은혜와 원한을 갚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범수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된다.

 권력싸움의 결과였긴 하지만, 조나라를 멸망시키려다가 범수의 제지로 물러난 백기가

범수를 원망하자 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가 계속 백기를 모함해 죽게 만든 일이나,

 범수가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을 무턱대고 추천해 요직에 앉혀 놓았다가

그 사람들이 연속으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범수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진나라는 사람을 추천할 때, 추천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추천인에게까지 연좌를 시켰다).

 두려워진 범수는 결국 다른 사람을 자기 자리에 앉히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데,

그렇게 등장한 사람이 바로 채택이다.


-진소왕이 정복왕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이 시기가 상앙의 변법으로 진나라가 내실을 다져왔고 이미 파촉까지 점령하여,

그 착실하게 쌓인 엄청난 힘을 방출할 곳이 열국들밖에 없었다는 점은 주요한 포인트다.

 또한, 여기서도 위염의 공로가 드러나는데... 위염이 진소왕을 바로 지지해서

반대파를 처단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내부의 다툼으로 체력을 소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다른 열국들에선 왕위 계승을 놓고 다툼을 벌이며 그나마 없는 체력도 깎아 먹고,

심지어 그 혼란을 틈타 침공한 다른 열국들에게 굴욕을 당하는 일들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내부의 다툼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고, 이런 내부의 다툼이 계속 일어나긴 했지만

그것을 계속 훌륭하게 무마하며 진행한 진나라의 행보가 얼마나 대단한지 드러난다.


-다른 사람의 공로가 컸다고는 하나, 진소왕 시대의 업적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소왕인 것은 사실이다. 이 시기 진나라의 역사를 보면 다른 왕들에 비해서 내용이 훨씬 더 많은데,

그 많은 내용을 차지하는 것은 모조리 군사 관련 부분이다(진소왕의 재위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시기 군사적인 성과가 엄청났다는 점이 변하진 않는다).

 정말로 정복왕이란 이름에 걸맞는 역사를 썼던 주인공이지만, 이 시기의 전투란 게

킹덤에서처럼 낭만이 넘치는 무장들의 피를 자극하는 그런 전투였던 것만은 아니다.


-진나라의 정책은 무력에 의한 직접적인 정복 외에도,

뒷공작을 통한 활동을 대단히 활발하게(사실상 국가적인 정책 중 하나였다) 벌였다.

 열국의 주요 관리나 유력 인사의 매수 등은 기본으로 이런 방식으로 진나라가 득을 보고

열국이 피를 본 경우는 수두룩하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매국노들을 전쟁에도 활용해서,

열국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진나라는 그때마다 적당한 쪽에 붙어서 열국들의 피해를 키우고

전쟁의 성과물은 날름 삼켜버리는 등, 단순한 전쟁을 넘어서 진정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 시기, 다른 열국들은 주제도 모르고 현실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사소한 분쟁을 계속 반복,

자기들끼리 살을 깎았음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진나라의 살은 몇배로 불려 주는 효과를 냈다.

진소왕 역시 이런 뒷공작의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진소왕에 대해 전해 지는 일화들은 진소왕의 인격을 의심하게 하는 것들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맹상군의 계명구도에 등장하는 진소왕,

그리고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에 등장하는 진소왕이다.


-제나라의 맹상군을 재상으로 임명한다고 불렀지만,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마음을 바꾼 팔랑귀 진소왕은

맹상군을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했다.

 이에 맹상군의 식객들이 활약, 진소왕의 애첩을 이용하여 진소왕의 마음을 돌려

간신히 풀려나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화씨의 벽이 조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진소왕은 성(도읍이라고도 한다) 15개를 줄테니

바꾸자고 제안하는데, 진나라의 파워를 생각하면 사실상 강요인 것이다.

 이에 인상여가 그 화씨의 벽을 들고 진나라에 갔지만, 진소왕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이 화씨의 벽을 꿀꺽하려고 하자 인상여가 화씨의 벽을 깨버리겠다며 협박한 후에

화씨의 벽을 빼돌려 버리는 일이 있었고...

 나중에 진소왕은 조왕과 회담을 갖자고 하고선 회담 자리에 나온 조왕에게 모욕을 주려고 한다.

 진소왕이 조왕에게 악기 연주를 시키자 진나라 기록관은 진나라왕이 조나라 왕에게

악기를 연주하게 했다고 기록하자(왕이 다른 나라 왕 즐거우라고 악기를 연주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인상여가 나서서 진소왕을 협박해 진소왕에게 악기를 연주하게

만들고 이를 가지고 똑같이 기록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염파와 인상여가 오해를 풀고 문경지교를 쌓는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 찌질한 일화들 외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왕의 그럴싸한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진소왕이 병으로 눕자, 백성들이 쾌유를 바라며 소를 잡아 바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놓고 진소왕은 진나라 법에 허가 없이 소를 잡으면 안 된다고 되어 있다면서

소를 바친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렸다던가,

 나라에 흉작이 들어 범수가 왕궁의 정원을 개방해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베풀자,

공이 있는 사람에게만 상을 주게 되어 있는데 어찌 법을 어기고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하는 이야기 등도 있다. 

 이는 당시 진나라의 법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고,

킹덤에서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소왕의 이미지와도

살짝 어울리는 일화라 하겠다.


-이 시기, 쓸만한 왕들과 쓸만한 정치가들이 계속 활약하던 진나라와 달리,

다른 열국들은 멍청한 왕들과 무능하고 탐욕스런 정치가들이 판을 쳐서,

안 그래도 고만고만한 세력을 자기들끼리 갉아 먹어 스스로 무덤을 팠다.


-그동안 쌓았던 막강한 힘을 외부로 뿜어냈던 진소왕은,

사실상 진나라의 전국 통일을 거의 달성했다. 백기의 죽음과 관련된 조나라에서의 대패배가

아니었다면, 전국통일은 더 앞당겨졌을 거라고 보기도 할 정도...


-킹덤에서 열국들이 그래도 진나라와 싸움을 벌일 정도로 힘을 보유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상은 상당히 달랐다. 열국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하는 동안 착실히 힘을 쌓았던 진나라는

이미 국력 면에서 열국들에 꿀릴 게 없을 정도였기에, 열국들은 진나라와의 싸움에 국운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저장해 놓은 힘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진나라는 뒤에서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했기에

킹덤에서처럼 열국과의 싸움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나마 무령왕의 개혁으로 진나라에 맞서던 조나라는 장평 전투로 폭싹 해서 목숨만 잇는 형편이었고,

진나라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힘이 있던 대국인 초나라조차 진나라와 비교하면 열세였다.

 그런 와중에 열국들끼리 치고 박고 욕심을 부리며 진나라의 조종을 받았으니... 참 한심한 상황이었다.

 암튼 킹덤에서는 열국들과 비등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나오고, 예를 들어 지금 진행 중인

염파와 몽오의 싸움에서 13만 대 13만의 싸움인데 초나라를 대비하느라 지원할 병력이 없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진나라는 열국들과 다 맞짱을 떠도 될만한 저력이 있었다.

 아무래도 열국들과의 싸움을 박진감 넘치게 만들려고 킹덤에서 그런 제약을 걸어 놓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