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블리치를 떠오르게 하는 미지근한 배틀물 - 사이렌 (Psyren)

베리알 2011. 1. 18. 20:08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막상 생각하려니까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아마 어디선가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만화 리스트라고 소개해 놓은 글을 지나가며

얼핏 본 기억 덕분에 집어 들었던 것 같다.


사이렌 (Psyren) / 集英社 / 이와시로 토시아키 (岩代俊明)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 동급생 소녀를 찾다가,

도시괴담으로 유행 중인 의문의 전화카드를 얻게 된 주인공 아게하는

그 전화 카드를 사용하게 되고 경찰로 변장한 이상한 녀석들에게 쫓기다가

의문의 전화벨과 함께 이세계로 떨어지게 되는데...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학산과 集英社에 있습니다 ]

책 표지에 써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시작에서 도시괴담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하지만, 점점 진행되면서 도시괴담과는 전혀 다른,

일본 소년지 만화의 흔-한 왕도 패턴이라고 하는 배틀물의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제목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다면, 이 작품이 어떤 배틀물이 될지 예상할 수 있다.

한글로 사이렌이지만, 영어는 Psyren...

제목에서 이미 초능력 배틀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괴담이라면서 제목이 저래서, 나는 단순하게 도시괴담을 겪어 나가는 약간의 초능력 소년소녀들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도시괴담은 그냥 발단일 뿐 엄청난 초능력들이 격돌하는 배틀물이다.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보다 보니 강하게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요즘 배틀물의 대표주자인 이것이다.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서울문화사와 集英社에 있습니다 ]

바로 블리치.

초중반(지금에 와서는 과연 중반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에는

꽤나 재미있게 봤었지만, 그 끝도 없는 배틀의 반복에 잘려서 아무 미련없이

접었던 작품이다. 지금은 무슨 스토리가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사이렌을 보면서 왜 이 작품이 떠올랐을까.

 둘다 배틀물이기도 하고, 왜인지 사이렌의 전개나 캐릭터, 분위기 등이

블리치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때려치운지 오래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블리치 쪽이

사이렌에 비해서 배틀물로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학산과 集英社에 있습니다 ]

사이렌 초반에는 그림체가 이랬다.



하지만 진행되면서 이렇게 되었다.

개성이 사라지면서 표준미에 가까워졌지만,

그 결과물은 왜인지 블리치 그림이 생각나는 부분도 있다.


 암튼, 중요한 점은 저 대사에 있다. [ 배틀 바보 ]

 내가 이제 늙어서인지 배틀물, 그것도 배틀 바보들이 우르르 나오는 배틀물은

정말 못 봐주겠다.

 배틀 바보란? 배틀물 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실제로 자만할 만한 실력도 아니면서(=상대방이 너무 센데도 불구하고)

실력 있는 척 오만 폼은 다 잡다가 신나게 깨지고, 목표는 언제나 놓치고...

그래서 이야기 맨날 꼬이게 만들어 다음이 궁금하기보단 이렇게 보라고 강요하는 것에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밀게 만드는 캐릭터들!

 사실, 배틀물에서는 저런 이상한 캐릭터들이 평범한 캐릭터인지라,

캐릭터들에게 매력이나 개성을 확실하게 부여하지 않으면 보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

블리치는 그 점에서 성공했으나, 사이렌은 실패했다.

매력적인 캐릭터는커녕, 개성 있다고 느낄만한 캐릭터도

보고 나서 남아 있는 강한 인상의 캐릭터도 전부 없~다.

 그러니 그냥 짜증 나는 배틀 바보들의 짜증 나는 전개만 강하게 부각될 뿐...                 



처음 시작에서의 상황이나 이런 화면 배치를 보면,

도시괴담을 소재로 한 추리물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그냥 훼이크일뿐,

그냥 잡어들로 위장해 놓은 화면이다.



그 본색은 이렇게 근거도 없이 무조건 넘치는 자신감을 가진 배틀 덕후들이 줄줄이 나오는 이야기...

내가 약자라서일까. 이런 여유를 넘어서 재미라는 말을 붙이는 상황을 보면 짜증이 난다.

죽고 죽이는 것에서 재미라니, 난 아무래도 살인마나 폭군은 아닌 모양... 다행이다.


 배틀물에선 왜 이런 이상한 캐릭터들만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저런 캐릭터들이 저런 비정상적인 자신감으로 충만한 것을 당연하게 볼 수 있을만큼

정말로 강력한 캐릭터는 거의 없다.

 저러다가 죽거나 지거나 나가 떨어지거나,

캐릭터 개인이 그렇게 망가지면 그걸로 다행인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

꼭 사태는 나쁜 방향으로 간다는 거... 위기를 앞에 두었으면 최선의 가능성을 찾아 최선의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 와중에 배틀에만 열을 올리는 거의 돌아이들로 보이는 애들만 잔뜩 나오니,

메이저의 메저키스트 주인공 보는 느낌이라 정말 짜증뿐이다.

(주:메이저라는 유명한 야구만화가 있는데, 주인공인 고로인가 하는 캐릭터가

정말 초초초진성 메저키스트라 불리울 짓만 골라 하기 때문에 유명하다.

 주변 사람들 생각 안 하고 자기 멋대로만 하는데, 이게 대부분 주변 인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민폐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언제나 앞에 놓여진 경우의 수에서 최악을 고르는

정도가 아니라 경우의 수에 없는 최최악을 만들어 내는 능력자인지라... 그렇게 스스로를

고통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즐기고 있는 스토리를 보면 정말로 변태라고밖에는

달리 말이 안 나오는 캐릭터다. 뭐, 덕분에 메이저를 진작에 접게 되어서 고맙다면 고마울지도)



블리치도 어느 순간부턴가 기술 이름에 완전 멋을 부여하는 것도 모자라,

뭔 얘기인지도 모를 이상한 외국 단어들 가져다 조합시키는데... 사이렌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배틀물에서 굉장히 유치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뭐, 캐릭터의 어빌리티에 이름이야 붙일 수 있는 거겠지만(노력에 노력을 더해 완성해 가는

기술이라면 더욱 더 이름을 붙일만 하겠다) 그 이름이란 게 도대체 어디서 누가 붙였는지

모를 지경이 되면 상황 자체가 유치해질 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유치원생이 주인공인 배틀물이 있다. 유치원생인 주인공이 손톱으로 긁으며

'마마의 바가지 긁기!'...라는 기술 이름을 낸다면 그럴싸 하다. 그런데, 유치원생인 주인공이

손톱으로 긁으며 '구음백골조!'...라고 하거나 '데스 크로!'...라고 한다면 어떨까.

 앞에서 유치원생 주인공이 무협지 덕후라는걸 납득이 가게 설정하거나,

초천재라 유치원생인데 영어 정도는 장난이다 싶게 설정하거나,

혹은 데스 크로라는 기술이 나오는 게임을 즐기는 것을 미리 잘 설정하지 않는 이상

작품 자체가 유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배틀물에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되었고... 블리치도 그랬는데,

이 사이렌도 그것을 따라간다. 기술 이름들을 보면, 도대체 이 캐릭터가 어디서 그런 말을

줏어 들어서 만들었는지 모를 단어들만 즐비하다.

 작가가 멋부리는 것도 좋지만 생각들은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어만 간신히 하는 것 같은

캐릭터에게 영어도 아닌 다른 외국어의 단어들을 조합해서 기술 이름을 붙여 놓으면 그게

정말 멋있다고 그만일까. 동물원 원숭이가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 어색하고 깬다.



게다가, 뭔가 정체 모를 엄청난 힘을 감추고 있는 주인공이란 점도 그렇고

(이런 거야 뭐 유행이란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흔하고 진부한 설정이긴 하지만),

그 힘을 쓰는데는 위험이나 제한이 아주 강하게 따른다는 것도 블리치가 연상되는데...

 딱히 블리치만의 설정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캐릭터 디자인이나 분위기, 그림 스타일 등에서

블리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안 그랬는데, 이약가 진행되면서 점점 등장하는 캐릭터 디자인을 보면

그림 작가가 블리치와 무슨 관련이 있었나 싶을만큼 낯익은 느낌이 풀풀 난다.



이런 이상한 가족 관계 설정이야 딱히 블리치 아니래도 소년 만화에서 너무 흔하긴 하지만...



딴에는 뒤통수 친다고 상황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배틀물을 질질 이어가기 위해서라고밖에는 안 보이는

이런 식의 정체 밝히기나 음모 밝히기도 그렇고...


 이런 게 정말 스토리에 끌려갈 수 있게 준비되고 연출되어야 하는데,

Dog나 Cow나 그냥 다 배틀물로 질질 거리기 위해...라고 써놓은 듯 해서 영~




블리치와 비교해서 사이렌의 최대 약점이 바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한두명도 아니고 진짜 꽤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중에 매력 있는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다...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고 암튼 매력을 갖춘 캐릭터가 별로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심지어, 이런 배틀물에서는 주인공 본인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도 매우 중요한데,

블리치와 달리 사이렌의 주인공 친구들은 별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친구들(=주인공의 파티원들)이 그 정도이니, 그 외의 캐릭터들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진짜 무미건조한 겉멋배틀바보들만 줄줄 나오는 것 같다.





 뻔한 배틀물 패턴이라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보다 개성적인 상황 구성 등으로

나름대로 매력을 갖춰볼 수도 있겠는데... 이 사이렌은 지겨운 배틀물 공식은 따르면서도

사이렌만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도 없었고 뻔하고 지겨운 공식을 덮을만한 흡입력 있는 스토리도,

그런 것들이 좀 부실해도 감안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도시괴담에서나 놀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확인은 못 해 봤는데(이미 관심에서 멀어졌으니, 그런 수고를 할리가 만무~) 사이렌의 연재가

중단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이렌에서 사이렌만의 어떤 매력을 발견하지 못 했던걸 보면

그런 결과가 나와도 당연할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볼만한 작품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더 킹덤이 소중하다.

부디, 소년지 패턴대로 따라가서 배틀물로 망가지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