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열전이 뭥미? - 사기 외

베리알 2010. 11. 17. 20:09


 열전... 낯선 듯 하면서도 의외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기인열전이란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걸? ^^

하지만, 거기서 말하는 기인이 뭔지는 대충 알아도 열전이 뭔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내가 이 블로그를 쓰는 이유는 기억력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심각하게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어서, 이제는 병원에 문의를 해봐야 하나...의

경계 안쪽에 아슬아슬하게 맴돌고 있는 지경이다. 그래서, 해리 포터에 나오는 기억 창고처럼,

기억의 메모들을 이렇게 남겨 놓기 위해 블로그를 쓰고 있는데... 킹덤을 보면서

역사서의 용어들 몇개가 가물가물해진 것을 느꼈기에 이참에 메모해 두고자 한다.

 지금 기억해 내는 내용들은 옛날에 삼국지에 관한 어떤 책을 읽었던 기억이다.

당연히 책 이름이나 저자 이름은 흔적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





( 이미지 출처 : 다음 www.daum.net )  

.

(이 이미지는 그냥 예를 들기 위해 가져온 것 뿐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책의 제목은 사기 열전이다.

사기? 사기는 중국의 사마천이 궁형을 선택하면서까지 남기고자 한,

중국의 역사서로 유명한데, 뒤에 붙은 열전은?


 이를 말하려면 일단 역사서의 서술 방식을 알아야 한다.

 역사서의 서술은 어떻게 할까?

 가장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 시간 순서대로 그냥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을 편년체라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만사 OK인 것 같지만, 이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어떤 사건이란 게 오늘 일어나 내일 마무리되면 다행이지만, 몇달 뒤에 진행 상황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수년 뒤에 나올 수도 있다. 게다가, 한달에 한가지씩만 사건이 일어나라는 법도 없다.

굉장히 친근하고 직관적으로 생각되는 방법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이상 규모의 역사서로는

쉽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전체로, 기전체는 편년체와는 방식이 다르다.

 기준이 되는 가 있고, 그 본기의 주인공-보통 황제-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은 이라고 해서

붙여 놓는다.

 삼국지 정사를 예로 들면 이렇게 된다. 조조 등 위나라의 황제들을 본기에 놓고, 그외의 장수, 참모

기타 인물들은 열전으로 넣는 것이다. 조조 같은 인물은 무제기로, 제갈량은 제갈량전 등으로 말이다.

유비나 손권은 당연히 본기가 없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황제는 only one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황제와 그 이외의 인물들로 편의상 구분하는게 아니라,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상의 중심은 황제라는 의식이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황제 개념과 중국의 황제 개념은 굉장히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서양의 엠페러들을 황제로,

중국의 황제를 황제로 같이 황제로 부르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인물들뿐 아니라 그 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들을 따로 붙여 역사서로서

완성을 꾀한다.

 인물별로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듯한 이 방식은 언뜻 그럴싸해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다.

되는대로 그냥 쓰다 보면, 유명한 인물과 듣보잡의 분량 차이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유명인은

조금이라도 줄이고 듣보잡은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A라는 인물에

대해서 A의 열전만 봐서는 종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비중으로 여러 인물들이

엮이는 사건이 있다면 누군가의 열전에는 좀 더 상세히 누군가에는 열전에는 생략을 하기도 하고...

사실, 일대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능률적이다.듣보잡 인물 같은 경우,

그나마의 분량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유명인물의 열전에 들어가야할 내용을 그저 듣보잡 인물이

언급되거나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듣보잡 열전에 넣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 진수의 삼국지 정사 등이 대표적인 기전체 역사서다.

(물론, 이런 서술 방식이 중국의 역사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역사서들도 이런 방식들로 나뉘어 진다)


 위 두 방식은 나름의 특징과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특히 중요한 단점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굵직한 사건 하나를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싶다면,

위의 두 방식으로는 어렵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기사본말체로, 어떤 특정한 사건 등을 정해

그것에 대해 풀어간다.


 위와 같은 방식들은 사실 책이라는 매체에 기록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던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요즘과 같은 전자 정보의 시대라면, 위의 방식들에서 각각의 장점을 끌어 오고,

한계를 극복해 궁극의 역사서 방식을 연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거대한 하나의 DB를 만들고, 이 DB에 시간 표기와 관련 인물과 사건 연결 색인을 적절하게

처리하기만 한다면... 일단 만들어진 DB는 그 다음부터는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보고 싶다면 그렇게 배치해서 보여주도록 하면 될 것이고,

특정한 인물의 일대기를 보고 싶다면 그 또한 손쉽게 뽑아내서 배치가 가능할 것이다.

특정한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싶다고 해도 역시 손쉽게 가능할 것이고, 그 사건과 관련된 다른

인물이나 사건과의 연결 역시 쉽게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책이란 매체는 분명히 좋은 매체이며, 앞으로도 종말이 선뜻 예상되지 않는 인류의 걸작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책만 존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전자출판을 단순히 텍스트를 종이에서

화면에 표시하는 걸로 옮기는 걸로 끝낼 게 아니라, 이런 식의 활용도 보편화되면 좋지 않을까.





 지금 이 내용들은 전문적인 역사 연구의 개념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열전이니 기전체니 하는 언급이 나왔을 때 그게 뭐구나...하는 정도만 알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게 참 서글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요즘의 교육 과정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국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세계사에서도 어디에서도 이런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고

언급을 받은 기억도 없다. 그냥 삼국지에 흥미가 있어서 이것 저것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이다.

 학교의 역사 수업이란 게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역사 수업은 중요하다. 사실, 그 어떤 수업보다 중요한 수업이어야 하는데...

한국에선 학생들에게 그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 세력들 덕분인지,

역사 수업도 개판, 역사에 대한 대접도 개판이다. 그래서 나라꼴이 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