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의 양날의 검 - 킹덤

베리알 2010. 10. 28. 09:14



  근래 작품들에선 그래도 관심 있게 보는 작품인 킹덤 (Kingdom)...


 얼마전 한국에도 18권이 출시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에는 거물급 지명도를 자랑하는 유명 인물인,

염파 장군이 있는데...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만화의 재구성이 꽤나 흥미를 주고 있다.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대원과 集英社에 있습니다 ]

  굳이 사기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염파와 인상여의 이야기는 유명하니 그 이름은 제법

알려진 편인 염파... 하지만 덕분에 이 염파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해 꽤 재미있는 사례가 되었다.


 진나라에 대항해 염파와 인상여가 굳은 우정을 나누는 일화 자체는 유명한데,

문제는 그 후의 일이다. 이렇게 일화로 알려진 인물들의 경우, 그 이후의 일까지 알려지는

경우가 거의 드물기에 염파와 인상여의 일화를 아는 사람이라도 이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대부분 문경지우니 문경지교니 하는 그들의 우정을 부각한

일화만 아는 데서 그친다. 


 실상은 굳게 맺어진 충신...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파의 경우, 바뀐 왕과의 트러블로 인해(사실 정확한 원인을 지금에 와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사기의 열전에 나온 짧은 언급만으로 그때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일종의 내전을 벌이고 외국으로 도망쳐 버리고 만다. 새로 바뀐 왕이 개종자였는지,

염파가 왕을 위협할만큼의 뭔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바뀐 왕이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었다는 쪽이 더 그럴싸하게 생각이 들긴 한다.

 염파가 비록 명성을 떨친 장군이라고는 해도, 자기네 나라에서 일종의 반란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고 도망쳐 온 인물이니만큼, 외국에서 그를 신용하고 중용할 리 만무하다.

이후 염파는 정착하지 못 하고 겉돌며 시간을 보내고 기껏 잡은 기회에도 공을 세우지 못 한다.

그리고 조나라를 그리워하며 죽고 말았다고 전해 지는데...


 즉, 이 킹덤에서와 같이 새로 둥지를 튼 나라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전쟁을 치르는

그런 일은 픽션이 마이 가미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역사를 소재로 한 픽션 작품의 양날의 검이다.

 분명히 픽션이라는 것을 알고 봐도, 작품에 매력이 있다면 거기에 빠져 들게 되어

자기도 모르게 픽션을 역사로 착각하게 될 수도 있는데, 해당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런 픽션을 보게 되면 그런 허구의 내용을 역사 자체로 받아 들이고 마는

일이 종종 생긴다.

 국내의 사극 드라마들이 그런 예가 되겠고, 삼국지연의 또한 그런 예가 되겠다.


 특히 이 킹덤에서 현재까지 나온 인물 중 가장 미화된 인물이라면 단연 진의 소왕이 되겠다.

 작품에선 엄청난 카리스마로 무시무시한 6대 장군을 통솔하는 거대한 영웅처럼 그려지는데...

과연 어땠을까?

 일단 소왕에 대해서 긍정적인 점이라면, 아-주 무능한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언급된 6대 장군이라는 유능한 장군들이 그의 밑에 마침 모였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소왕은 그런 기회를 차버리지 않고 그들을 잘 활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인물은 아니다.

왕이라는 위치는 정말 중요하다. 현재에도 대통령 하나 바뀌는 것에 따라 나라가 금새 개판

금새 공사판이 되는데, 그 옛날 임금이라는 자리는 그에 비할 수 없었다. 6대 장군이 모였어도

왕이 제대로 활용 못 하고 다 말아 먹으면 그만이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과연 작품에서처럼 그런 굉장한 영웅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진 소왕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일화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식객들의 다양한 재주로 진나라를 탈출하는 맹상군 이야기... 이 이야기에 나오는

욕심 많고 신의도 없고 생각도 없고 여자만 밝히는 그 진나라왕이 바로 그 소왕이다.

 염파와 인상여 일화에서 화씨의 벽이라는 진기한 보물을 다짜고짜 내놓으라고 깽판 놓고,

그 보물을 15개의 성과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가 싹 모른 체 하는 욕심 많고 신의 없는 진나라 왕이

바로 그 소왕이다.

 어떤가. 킹덤만 보면 엄청나게 그럴싸한 영웅처럼 그려지지만, 역사서 속의 모습은

쪼잔하고 탐욕스럽고 인간성이 의심되는 찌질한 왕에 훨씬 더 가깝다.

 군사적 재능에 있어서도 6대 장군을 잘 썼다...정도에 그쳤을 것 같다고 의심되는 건,

킹덤에서도 이미 언급된 백기의 경우, 유능한 장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왕이 거의 뻘짓으로

일으킨 전쟁에 대해 무모한 전쟁 참여 요청을 거부하고 밉게 보여 소왕에 의해 자결하게 되는데,

그런 소왕이 정말로 그럴싸한 군사적 재능이 있었는지는 좀...



 암튼 이런 게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의 양날의 검인 것 같다.

 역사서 자체나 알려진 역사적 일화들이 나중에 오류로 밝혀질 수도 있고,

또 이런 허구의 작품이 역사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건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이것이 허구라는 점을 인지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허구라는 인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에 몰입하는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말이다. ^^



  결국 드러나 옛연인들...

진왕 정, 즉 시황제가 여불위의 아이라는 이야기에 대해선 사실 논란이 있다.

 일단 그 이야기 자체가 단박에 믿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이도 하고,

역사서에 따라 가능성을 없애는 내용들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랴. 수천년 전 진시황이 누구의 씨인지 알게 뭐람. ^^;;;



  이 시절, 즉 여불위가 자초(진시황의 아버지)에게 미희를 넘기기 전에 과연 이런 관계였는지도

사실 100%라고는 못 해도 선뜻 믿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불위라는 인물이 저렇게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조를 하고,

그 여자에게 행복으로 가득한 장미빛 미래를 꿈꾸게 할 그런 인물은 아니었을 거라는 거다.

 미희의 출생(무슨 창녀 쯤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기열전에 따르면 제법 유력한 집안의

딸로 언급된다)은 논외로 하더라도, 여불위라는 인물은 이미 이 시기 이전부터 손 큰 장사꾼이었고,

그의 일화나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저런 순수한 남녀의 이미지가 그려질리 만무하다.



  역사에서는 이제 바로 그 노대가 등장할 타이밍이 오고 있다는 것...

 과연 이 킹덤에서 노대가 어떤 식으로 등장하고 어떤 역할을 할지 상당히 궁금하다.

뭐, 아예 파격적으로 등장 안 할 수도? ^^



  역시나 진왕 정다운 모습이다.

 시황제가 된 이후 폭군스러운 모습을 잔뜩 부각시키긴 해도,

어디서나 일관되게 인정하는 건 그 이전 시절의 정의 비범함이다.

(비범하다는 게 인간성까지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능력과 별개로, 정의 사람됨에 대해선

비범함에 대한 일관성만큼이나, 아주 일관되게 문제 있는 걸로 그려지니까).

이런 왕이 과연 어떻게 시황제가 될 것인지 꽤 궁금하다.

지금 진행 속도라면 드래곤볼 이상이 되어야? ^^;;;



  그야말로 (장차) 진나라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몽염이나 왕분의 경우, 통일 진나라의 개국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공로자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의 활약은 이신의 후손들처럼 찾아 보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한데... 몽염의 경우, 진나라를 말아 먹은 환관 조고에 의해 일족이 망하다시피 하고,

왕씨네도 그 군사적 재능이 후손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인지 역시 몰락해 버린다.

 사기에서는 이에 대해 장군 집안 3대는 망할 수 밖에 없는데, 2대에 걸쳐 쌓아 온

희생자들의 원한이 3대를 가로막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어떨지는...

 이신의 경우 그렇게 원한을 쌓을 만큼의 엄청난 공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신 본인의

집안에 군사적 업적이 있었다고 찾아볼 수 없으니 아무래도 그 후손들은 그런 원한에

벗어나 있었을지 모르겠다.



  냉정하지만, 뼈 있는 표현이다.

 실제로 현실은 어떨까. 돈과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를 토로하지만,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 그것조차 재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 그 재능을 써서 범인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비겁한 것일까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은 원래부터 불공평하다. 팔 하나 없이 태어난 사람이나,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은 팔다리 멀쩡하게 태어난 사람에 비해 이미 신의 저주를 받은 채,

불공평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10개를 배워 100을 아는 천재와 10개를 배워 1개를 알까 말까한 사람이 과연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100개를 아는 천재에게 99개는 잊어버리게 만들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흔히들 가진 자들의 부정 출발을 막고 평등한 위치의 출발을 추구하지만

(물론, 기득권에선 이런 거 추구 안 한다. 현실은 보다시피 음서제가 부활하는 등,

가진자들을 위한 개판인 나라가 되어 간다) 사실 이상적으로 보면 그것조차 부족하다.

 단지, 어느 정도 수준...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정했을 뿐인데, 현실은 그런 가이드 라인조차

붕괴되어 가는 더러운 신분제 세상...



  현대전에서조차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게 이런 특권이다.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니 말이다. 하소연하려면 빌어먹을 신(조물주)에게 해야 하려나...



 상투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꽤 인상적인 대화들이다.

 하지만 현실이나 역사가 보여주는건 마이 실망스럽지만...

 바꾸고 싶어서 올라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바꾸고 싶었던 악습에 스스로 물들고,

꼭대기에 올라서면 입장이 바뀌었다고 자신이 그 악당이 되어 버린다.

 물론,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굴레나 한계들이 위에서는 보이게 되었다는 핑계도 있긴 하지만,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그게 진심인지 변명인지는 모르는 거고 말이다.





  암튼 근래 만화 작품들 중에선 확실하게 다른 재미를 보여주는 킹덤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부족한 것을 오히려 효과적으로 역이용하고 있다.

 소년지스러운 위태위태함도 보이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긍정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