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해적판에 대한 즐거운 추억 - 알라딘코믹스 아랑전설

베리알 2010. 1. 6. 08:39

 

 

 

 

 지금이야 뭐 불법복제의 문제는 심각하다고는 해도,

해적판들은 마이들 사라진 시대지만... 세기말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해적판의 천국이던 게

한국에서의 만화 시장이었다.

 

 500원, 800원 등등 작은 크기의 허접한 해적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만화책 크기의 비교적 고가의(!) 그럴싸한 만화책들도 알고 보면 해적판이 대부분,

그중에는 해적판 주제에 정품임을 강조하며 당당함을 뽐내던 사건들도 있었을 정도. ^^;;;

 

 아이큐 점프에서 일본 만화를 정식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후(뭐, 사실 이런 만화 잡지들에서도

일본 만화의 카피나 베껴 그리기가 꾸준히 유행하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적판들이

더 각광을 받았는데... 초인기작들을 빨리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욕망이

최소 몇회에서 몇십회까지 차이 나는 정식 발매 연재본보다

일본 발매 속도에 맞춰서 나오는 해적판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 허접한 해적판들이 다양한 버젼으로 존재하던 작품인데,

나중에는 드래곤볼 한권에 드래곤볼은 달랑 조큼 들어 있고 다른 엉뚱한 만화들로 채워서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뭐, 그 덕분에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던건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특히 엘디가인을 이렇게 알게 되었던 것은 가히 축복... ^^;;;

 게다가 일본 만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정품이 쑥쑥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얻을 인터넷도 없다시피 했었고, 일본판 주문도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클릭만 하면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기에)인지라 해적판들의 존재는 나름대로 소중했다.

 

 암튼 그런 시대는 이후 서울문화사와 대원의 강공과 학산 등의 등장으로 점차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해적판에 비해서 정품들의 퀄리티가 높았던 탓도 있겠다.

(그러나 꼭 그런건 아니었다. 대체로 정품의 퀄리티가 인쇄-종이질-번역 등 모든 면에서

해적판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간혹 정품 퀄리티가 더 딸리는 경우도 있긴 했다.

초기에 이런 경향이 많았는데 뭐 점차 개선되긴 하였다)

 

 해적판 시절 나름대로 유명한 출판사들이 있었으니...

 그중에 하나가 바로 알라딘 코믹스다.

 

 해적판도 해적판끼리 경쟁이랄까 그런게 있기도 했다. 유명 작품이나 인기작이라면

출판사가 몇군데나 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름도 모를 출판사에서부터

나름대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출판사 등 여러 부류로 나뉘었는데,

나름 이름을 알린 출판사 중의 하나가 알라딘 코믹스였다.

 

 얼마전 옛날 박스들을 잠깐 움직거리다 보니 튀어 나온 만화책이 있는데,

이걸 보니 갑자기 이런 저런 예전 생각들이 떠올랐다. ^^

 

 

 

[ 작품 이미지는 알라딘 코믹스판을 직접 찍었지만,

실제 저작권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 

 (아마 저작권에 대해선 파악이 불가능할 것 같다.

일단 SNK에서 사용하던 일러스트도 있지만,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듯한-동인 수준까지- 작품들을 짜집기 해 놓은 구성인지라...)

 

 당시는 오락실의 대전 격투 게임이 인기가 있던 시절인지라, 그걸 소재로 한 관련 시장도

대단했기에 이런 책도 나왔었다.

 제목은 아랑전설이고(영어명 Fatal Fury 던가?) 실제로 아랑전설 위주로 내용도 되어 있지만,

다른 SNK의 작품들도 등장을 한다.

 특히, 아랑전설과 뗄 수 없는 용호의 권(영어명 Art Of Fighting이던가?)은 비중이 높다.

 

 표지의 인물은 한때 여성 캐릭터 인기 상위를 달리던 시라누이 마이...

 팬티 좀 보겠다고 발차기를 시켜 보던 시절... ^^;;;

 

 

 역시 패러디는 아는 만큼 보이고 재미 있나 보다.

 이걸 처음 봤을 때는 이 장면이 무슨 장면이고 무슨 재미를 주는 장면인지 몰랐다.

당연하지만, 내가 맛의 달인이란 작품을 보게 된 건 2000년 이후니까.

 

 그래서인지, 맛의 달인을 알고 난 후 이 장면을 다시 보니 그제서야 이 4컷의 재미가 느껴졌다. ^^

 

 

 정식 판본도 번역에 대한 비판이 있긴 하지만, 해적판 시절에 비할 수는 없는 게...

해적판들의 번역은 그야말로 번역이 아니라 되는 대로 끄적거리던 수준이였기 때문이다.

 위 장면의 [ 브레인 바토르 브라자즈 ]는 무슨 여성용 브래지어 얘기인가 싶을 수 있는데,

번역하는 사람이 가나만 간신히 읽을 수준이었던 탓에 가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사실 50음도라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번역한 건 양호한 시절이었다. ^^;;;)

영어 -> 일어 -> 한국어...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예 원 뜻이 날아간 경우다.

 원래는 Brain Battle Brothers...라는 것으로, 두뇌 싸움을 벌이는 보가드 형제의 에피소드.

 그러니까. 브라자즈라는 것은 사실 브라더스...가 되는 거다.

 

 

 이 역시 그대로 옮겨 놓기만 한 기술 이름...

 반이냐 방이냐는 논외로 하더라도, 어쨌거나 너클을 나쿠르 그대로 옮겨 놓기만 했다.

 

 이런 사례는 사실 딱히 사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했고,

그나마 이렇게 원래의 가나음이라도 옮겨 놓으면 양반이었다.

아는 글자만 대충 연결해서 소설을 쓰거나 하는 경우도 보통이었으니...

 

 

 번역 수준은 정말 처참하다.

 보가드 형제가 순식간에 보가드 남매가 되고,

앤디 보가드와 시라누이 마이는 남녀커플에서

순식간에 L커플로 바뀌는 순간이다. ^^;;;

 

 

 지금이야 전문 번역가들이 울고 갈 정도의 실력자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세상이지만,

이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위의 상황은 어설프게 50음도만 익힌 방증인데...

 

 마징가의 경우 원래 머신건일테고, 쇼트간은 숏건이었을 거다.

 하즈카...의 경우는 바쥬카를 말하는 걸텐데, 마징가는 머신건이란 말을 몰랐기에

대충 마징가라는 비슷한 말을 넣었을테고 하즈카의 경우 촉음에 대한 이해가 없던 거라고

볼 수 있겠다.

 

...반전이라면, 내용 중에서 테리가 워낙 바보라는걸 표현하기 위해 원작에서 저렇게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겠다는 건데, 쇼트건이라고 써놓은 거나 다른 대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는걸 봐서 아무래도 번역자의 실수 사례가 되겠다.

 

 

 15년... 강산이 통째로 바뀌고 또 절반이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당연하지만 이런 시절에 이런 뒷면 표기는 참 썰렁했다.

 지금 정품들의 빼곡한 원제 등 각종 정보 표시와는 전혀 다른... ^^

 

 그나저나, 저 주소 아직 살아 있을까? ^^

 

 

 이 전화 번호, 아직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그대로일까나 다른 업체일까나...

 

 

 암튼 15년만에 다시 본 추억의 해적판 덕분에 간만에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수하게 버렸던 수많은 쓰레기(?)들도 어딘가에 잘 보관해 놓았으면...싶다.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