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같은 이름, 그러나 멘붕을 불러 일으키는 다른 이름 - 여명의 눈동자 (黎明의 눈동자)

베리알 2013. 8. 26. 21:34



여명의 눈동자 (黎明의 눈동자)


  어린 아니,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몰라도(아마, 최근 김종학PD의 죽음으로 인해,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듯...),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작품이

바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일 것이다.

 지금도 아니, 날이 갈수록 가장 중요해야할 근현대사 교육을 개무시해가는 앞날이 안 보이는 나라에서,

몇십년 전에 이렇게 대놓고 근현대사를 다루는 드라마를 내보냈다는 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말이 나온 김에... 개인적으로, 빗살무늬토기고 움막이 어떻고 하는 초고대 역사에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교육 비중에 있어서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개발 새발 소리가 역사의 가해자와 그 시다바리들에게서 당당하게 나오는

한심한 나라가 되었지!)


  암튼... 지금에도 51.6%의 국개들이 든든하게 수구꼴통들의 뒷문을 주물러 주는 꼴같잖은 나라에서,

몇십년 전에 이런 내용의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방송할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지금도 들곤 한다.


 이 드라마는 그 유명한 김종학 PD와 역시 그 유명한 송지나 작가가 황금 콤비를 이뤘던 작품으로,

소설가 김종성씨의 동명의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게 참 흥미롭다.

 드라마 방영 당시, 당연히 소설도 덩달아 인지도를 높였는데... 당시에는 소설을 본 지인들의 얘기는

하나같이 야하다는 것뿐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

 그러나, 내가 야한 장면 보는 걸 넘어서, 소설을 제대로 본 건 드라마가 끝나고 나중의 일이었는데,

당시 정말 요즘 말로 멘붕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렸던 기억이 난다. 왜?

 이 작품은 드라마와 소설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

 그것도 뭐 괴작으로 만들어져서 달랐다는 게 아니라, 드라마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재구성으로 달라졌다는 게 정말 놀라울 지경...





<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


-일단 예스24에 올라온 책 이미지는 이런데... 인기작(?)이다 보니, 꾸준히 재판이 이뤄져서,

가장 최근에 팔리고 있는 판본은 이런 형태인가 보다. 내가 봤던 건 요즘에는 역사 코너의

오래된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


-원작 소설이나 만화, 게임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뭐 괴작으로 나오는 경우가 보통인 게 세상의 상식(!)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의미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미디어가 되고 말았다.

(반대로, 유명한 영화 등이 나왔을 때 그 인기를 업고 소설化시킨 책이 팔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뭐 영화를 그대로 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지라...)


-드라마는 정말로 감동적이다. 아픔의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주요 인물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잘 만들어졌다. 특히, (그중에는 그 옛날의 드라마 출연작들을

의심케하는 행보를 보이는 배우도 있긴 하지만... -.-;;;) 주요 3인방의 캐릭터는 장난이 아니었고,

그중에서도 드라마 전개의 핵심에 선 최대치는 소위 말하는 빨갱이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지만,

빨갱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너무도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그려졌는데... 과연 소설에서는 어떨까.

  혹시나 소설을 아직 안 본 분들이나 스포를 피하고 싶은 분들은,

바로 아래 단락 내용은 넘기시길.

































-소설과 드라마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특별한 몇몇 악역을 제외하면, 적잖은 캐릭터들이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그런 인물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런 인물은 아예 없다!

 3명의 주인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물은 일회용 피해자 혹은 일회용 단역 악역으로 나왔다가

사라질 뿐이다. 시대의 아픔을 시대 자체에 집중한다면 모를까, 그걸 캐릭터들에게서 찾고자 한다면,

황당해하거나 멘붕을 일으키기 딱 좋다.


-특히!!! 근현대사 사건들의 중심에 선 매력적인 인물로, 시대의 아픔을 절절하게 느끼게 했던 최대치...

 드라마의 최대치는 드라마의 최대치일 뿐이다.

소설에선 그냥 ㄱ ㅐ ㅅ ㅐ ㄲ ㅣ다. 정말 더도 덜도 아니고,

뭐 봐주고 자시고할 구석도 없이 그냥 딱 저렇다.

 혹시나 여성분들이 드라마의 최대치에게 매력을 느껴, 소설을 찾아본다면... 내가 이걸 왜 봤을까

엉엉 울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

 언젠가 들은 얘기라 확실치 않지만, 드라마의 최대치는 극본의 송지나 작가가 자신의 남편을 모델로

해서 이상적인 남자상을 그렸다는 얘기도 있던데... 드라마의 최대치는 그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소설에서의 최대치는 그냥 인간 쓰레기일 뿐. 용케도 그런 구제불능의 쓰레기를 그런 매력적인

인물로 아예 재창조했구나...하며, 새삼 송지나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두 미디어의 차이는 단순히 캐릭터들을 그렇게 재창조한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주요 캐릭터들이

재창도된만큼, 그리고 주변 캐릭터들의 역할이나 수명도 차이가 큰만큼, 분명히 근현대사의 굵직한

전개는 그대로 가지만, 내용은 정말 딴판이다. 드라마가 정말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졌다면,

소설은 정말 구질구질하고 찌질찌질하고... (소설이 엉망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아님!!!)

 드라마에서 직간접적으로 기묘한 연결 관계를 보여줬던 주인공 3인들의 관계조차,

소설에서는 그게 뭔 소리여!...라는 수준이다.


-괴작으로 재탄생된 영화들을 보면서는 피식할지 몰라도,

이렇게나 드라마틱하게 재탄생된 드라마를 봤다면... 역으로, 원작이 되는 소설을

보지 않는 게 좋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이 여명의 눈동자가 아닐까 싶다.

(소설이 형편없다거나, 혹은 재미가 없다거나 이런 얘기는 절대 아님!!!

 어디까지나... 드라마에서 드라마틱하게 매력적이었던 인물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멘붕의 충격을 피하는 게 좋겠다는 의미에서의 얘기다)

































-드라마에서의 재창조는 단순히 주인공급 인물들의 긍정적인 재창조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도 엄청난 재창조를 거치고, 이는 드라마의 매력을 몇배로 끌어 올린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내가 봤던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서

친일파 연기의 최고로 꼽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 나오는데...

바로, 박근형씨가 연기한 스즈끼!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무수한 친일파 캐릭터들을 봤었지만... 이만큼 TV 속으로 손을 넣어

캐릭터의 목을 졸라 버리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정말 박근형씨 연기가 연기가... 아줌마들이 일일 드라마의 악역에 몰입한다지만,

이 박근형씨의 스즈끼는 그런 유치한 악역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정말로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스즈끼 그 자체였다.

 한국 근현대사의 친일파, 매국노가 뭔지 그냥... T T


-이 드라마의 매력을 더해 주는 게 이런 주변 인물들의 재구성이다.

 이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의 명장면, 명대사로서 잊을 수 없는 게 많고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일제 시대 때 스즈끼에게 그토록 당했던 하림이, 이제 해방이 된 나라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스즈끼를 발견하고 처절하게 외치던 그

 스즈끼! 네가 여기 왜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예전에 이 장면을 인용하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현대까지 (그리고 슬프지만 미래까지) 지배하는

친일파들을 잊지 말자는 글이 퍼졌었는데, 실제 드라마에서의 대사와 그 글에 인용된 대사와는

핵심은 같지만 표현 순서 등은 조금 다르다. ^^)

...란 장면은 소설에는 없다.

 경찰서에 온 하림이, 그 악질 형사 스즈끼를 만나서 울분에 차 외치고, 그런 하림에게

빨갱이라 비웃는 스즈끼의 이 장면...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를 처절하도록 강렬하게 보여주는 이 짧은 장면은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친일파, 즉 개같은 매국노의 레퍼런스를 보여주는 드라마의 스즈끼와 달리,

소설의 스즈끼는 일찌감치 퇴장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소설에선 착한 캐릭터라는 건 아님. ^^;;;).

 이런 식으로... 드라마에서 오래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 중 대부분은 소설에는 찌질한 악역으로

잠깐 나오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그런 장면들은 소설에는 흔적조차 없다.

 여러모로... 소설과 드라마는 다르다. 정말 다르다.

(더불어서... 저 장면이 정말 강렬한 이유는 저 장면 자체가 소름이 돋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소설과 달리 작품이 끝날 무렵까지 내내 스즈끼가 -본질은 가이스키 그대로지만- 변해 가는 모습이,

그냥 화면에 스즈끼 얼굴 한번 나오기만 해도 열불이 터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정... 한국 근현대사의 매국노 그 자체였다)


-물론, 이건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차원의 얘기를 하는 것이고...

소설과 드라마는 그 전개 방식이나 표현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소설은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할 영역까지 활용하여 근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어느 쪽은 좋고 어느 쪽이 떨어진다는 차원의 얘기는 아니다.

 단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원작과 아주 다르게 드라마틱한 매력으로 재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드라마의 매력에 홀려서 소설을 본다면... 소설의 매력을 발견하기보단 기본적으로 멘붕에

주화입마하기 딱 좋다는 것.

 뭐, 실제로 이 작품은 드라마에 대한 평들이 더 후한 편이긴 하다. 심지어, 청출어람이란 평들도

있을 정도니까.

 개인적으로는 소설은 소설로, 드라마는 드라마로 각자의 매력들이 분명히 있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마치 꼬이고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듯한 드라마의 인물 관계 재구성은,

드라마라는 장르로 재창조되면서 얻는 부가이익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설이라는 원작을 뛰어 넘는

면이 있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라마의 드라마틱한 장면이나 대사 등은 정말로 재구성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


-암튼! 혹시나 드라마에서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나 인간 관계 등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분들이라면...

이 여명의 눈동자 소설은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 추억이 더 희미해져서 아무래도 좋게 되었을 때,

그때 기회가 되면 소설로도 접해 보시길... ^^


-김종학PD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