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제목 그대로, 오역에 관한 사전! - 안정효의 오역 사전 : 당신을 좋은 번역가로 만드는 깐깐한 번역 길라잡이

베리알 2013. 8. 21. 20:12



  이 책을 어떻게 보게 됐더라... 헉!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입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이 저주받을 지우개 기억력... -.-;;;


 뭐,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책을 봤다는 것.

(정확하게는 보고 있는 중... 두께도 두께도 책 장르도 장르인지라, 진도라는 개념이 적합치 않다!)

  천조국의 식민지도 아닌 것이, 언어적으로 친한 언어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된 게 온 나라가 그놈의 영어 타령만 해대면서 실속은 없는 이 쩔어주는 사대주의의 나라인데,

더 황당한 건 그런 나라인데도 번역의 수준은 참 한심 나올 때가 많다는 거... 대학에서 사용되는 교재는

1, 2년 동안 사용된 것도 아닐텐데 개정이 아무리 되어도 맨날 틀린 것들 투성이이고, 외국에선 상식인

자국어 더빙을 거부하는 국민들은 그렇게나 많은데 정작 극장이고 2차 미디어고 간에 달려 있는 자막들은

허접한 자막들이 일상다반사... 심지어, 국가 기관에선 외국과의 중요한 외교 문서를 제대로 예산을 들여

확실하게 검증하고 또 검증해도 모자랄 판에, 푼돈 아끼겠다고 오류 번역해 놓고는 잘했다고 낄낄 대고...

 참 뭐가 뭔지 모를 나라다.


 암튼 뭐... 그중에서 영화의 번역에 대해선, 사실 원초적인 문제와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영화를 보면서 번역을 해나가도 모자랄 판에, 대본만 던져 주고 번역 하라는 것도 드문 풍경도 아니고,

넘사벽으로 한계를 규정 짓는 글자수 제한, 번역 비용 아끼겠다고 이상하게 꼬이고 꼬인 업체 관계 등등... 하지만, 그런 사정들을 고려해주고 싶어도, 번역 결과물이라는 게 모험왕 프로도강철 미사일

현실을 보면... 사정이고 오정이고 택도 없는 소리일 뿐.


 



<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


-어쨌거나, 어떻게 보게 됐는지 모르게 보게 된 이 책.

 이 책은 번역가 안정효씨가 3000여 편의 영화 자료를 수집해서, 2000여 개의 오역 사례를 수집한 책으로,

번역 교재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평론 같은 그런 영화 관련 책도 아니고... 순수하게,

주석을 달아 놓은 사전 느낌이랄까. 아니, 정말로 사실상의 사전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책 방식 자체가

사전처럼 알파벳 순으로 단어 구분이 되어 있고, 단어와 그의 오역 사례, 설명과 정확한 번역 등으로

쭈욱 이어져 나가는데... 정말로, 사전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충분히 미리 숙지를 했음에도, 실제로 처음 이 책을 보면 좀 당황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 인지상정.

영화를 소재로 오역 이야기를 한다는데, 영화 스틸컷 하나 없이 그냥 사전... 내용 역시도 영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번역에 집중된 설명들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경기 일으키기 딱 좋다. (^^;;;)


-암튼 뭐... 그런 점에서 일단 접근성은 꽝이다. 번역에 대해 다룬 책들은 이 책 말고도 많지만,

(특히나 근래에는 흥미를 끌기 위한 책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 정도로 고지식한 책은 처음 봤다.

그냥... 사전이다 사전. 책 두께도 예상 이상으로 두껍고(표시되는 페이지 숫자만 829!!!), 컬러풀한

책도 아니라 딱딱한 사전이나 영어 교재를 연상케 하는 단촐한 (사실상의) 2색 인쇄. 그러면서도

정가는 3만원에서 겨우 2천원이 빠지는 2만 8천원!

 여러모로, 섣불리 집어 들기도 어렵고 누구에게 추천해주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런 외형적인 부분은 문자 그대로 겉치레일 뿐.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 아니겠는가.

(물론... 이 책의 가격은 요즘처름 블루레이 한장 구입도 못 하는 처지에서는 엄청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건 책 내용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표시된 책 가격 자체가 비싸다는 의미로,

책 내용을 고려하면 이 가격은 싸다고 생각된다. 쓰잘데기 없는 영어교재나 자기계발서 생각하면 뭐...)


-그런 외형적인 부분의 방어막을 일단 돌격해 들어가고 나면... 이제 신세경이 펼쳐진다!

 자화자찬이나 어설픈 가르치기 혹은 뜬구름 노는 그런 머리글이 아니라, 빽빽하게 직설적으로 번역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다짜고짜 던지는 머리글부터 이 책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불러 일으키고...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관심이 없더라도 이 머리글은 한번 꼭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http://www.yes24.com/24/goods/9101114?scode=032&OzSrank=1

현재, 예스24에서는 미리보기로 앞부분을 일부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머리글을 읽어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주석 좀 달린 사전 느낌이지만, 그 내용물은 그냥 사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화!

(고전 영화들이 많긴 해도) 내가 모르는 학술지를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들어본 영화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전 같은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술술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 내용물이 정말 기똥차다! 나같은 영어맹이 보기에도 이런걸 번역이라고 했었나 싶은

초허접 번역 사례부터, 나같은 영어맹(외국어맹)은 짐작도 못할 번역 사례에다가, 이 책의 지은이가

칭찬하는 번역 사례 등등... 단어 하나하나가 정말 재미있게 튀어 나온다.


-단순히 번역 사례에 대한 업계의 가십 이야기나 흥미 위주의 번역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정말로 사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쏙쏙 들어오는 사전은 없을 걸? (^^)


-내가 이 책이 정말 재미있었던 건, 지은이의 번역 철학(!)에 많은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번역가의 탈을 쓴 판타지 소설가나, 자기가 절대번역반지를 끼고 있는 줄 아는 오만한 번역가 등이

번역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번역 관련 책을 내놓고 으시대는 세상에서... 진정한 번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번역가의 말은 참 찐한 향기를 풍기는 것 같다.

 단순한 사전이 아니다. 오역을 지적하는 하나 하나의 사례마다... 참 다양한 부분에서의 번역 이야기들이

설명으로 붙는데, 평소 번역에 대해 생각하던 여러 뜬구름 잡던 생각들이 쏙쏙 정리되는 느낌이다.

 특히, 최근 레드더레전드의 번역(과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 덕분에, 번역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했던 생각들에 대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대답을 하는 듯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건 우연인지 필연인지. ^^


-어쩌면, 이 책을 정말 봐야할 사람들은 요즘의 (일부) 번역가들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물론, 번역을 맡기는 영화 관계자나 배급 업체 등의 관계자들에게 더 시급한 걸지도...)

 특히나, 모험왕 프로도를 만든 사람이 맛깔 나는 번역이 어떻고 칭송을 받고 있질 않나,

진짜 어떻게 그런 단어를 만들었는지 설명을 들어 보고 싶은 강철 미사일이 현실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번역 환경의 어려움 이전에, 기본을 망각한(혹은 처음부터 그런 게 없었던) 번역가들도 있던 건 아닐까.


-책 뒷면에 있는 작가의 머리글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대부분의 오역은 개별적인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를 모른다기보다는, 어떤 한 단어의 미세하거나

깊은 감각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영어 단어 하나에 대해서 우리말 뜻을 하나만 알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경제적인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고 스스로 믿기가 쉽지만, 그것은 참으로 미련한 판단이다. 이런 성향을 보이는 번역자들은, 단순히 사전을 찾아보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잘 알지 못 하는 단어를 대충 짐작으로 꿰어 맞춰서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하지만, 남들이 보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나의 사소한 결점이 가장 먼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마련이다.

눈속임은 요령이 아니라 태만이다.

(머리글의 전문을 보려면, 위에서 링크한 미리보기를 보시라! ^^)


-외형적인 면에서 덧붙이자면, 양장도 아닌 외형이나 옛날의 좋은 종이질 책을 보는 듯한 종이,

두꺼운 책을 고려한 듯한 예전의 사철 방식 제본 등등... 분명히 최신 책을 보고 있으면서도,

왜인지 과거로 돌아가 옛날의 책을 보는 느낌도 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