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수퍼히어로 신화의 나라만이 만들 수 있는 또 하나의 신화 - DC : 더 뉴 프런티어 (DC: The New Frontier) 1, 2

베리알 2013. 5. 29. 17:35


  일단 정말... 작가 다윈 쿡(Darwin Cooke)에게 사죄를 하고 싶은 심정이며,

그동안 수퍼 히어로물을 (비교적)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착각이었는지

깨닫고 절실히 후회중이다.


 현대의 흐름에 맞춰서 계속 새로운 기원으로 재설정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아니 기원과는 관계없이 맨날 바뀌는 코스츔이 상식인 수퍼히어로 세상.

 그런데... 표지에는 여봐란듯이 쌍팔년대도 아니고 실버 에이지 시대는 됨직한 구석기 도끼 같은

촌스러운 코스츔을 입고, 역시나 그 시대의 표정들을(이 시절 즈음의 홍보물 같은 걸 보면 나오는

그 살짝 실실 + 활짝 실실 하고 있는... ^^;;;) 하고 서 있는 히어로들과 히어로인지 아닌지도 모를

인물들이 역시 촌스러운 구도에 포즈로 서 있는 그림이 나와 있는 이 작품은... 첫인상부터가

좋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수퍼히어로 그래픽노블을 구입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피하게 된 작품이다. 도대체 이 시기에

이런 구석기 유물 느낌의 작품이 나오다니!!!...하는 이상하게 스물스물 피어나는 호기심에도 말이다.


 그러다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 하고(역시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ZOZ같은 세상에 투덜대며,

판도라를 탓하고 있을 게 아니었다. ^^;;;), 1권을 구입해서 드디어 감상을 시작. 그리고 얼마 뒤...

아직 얼마 읽지도 못한 상황에서 허겁지겁 2권을 주문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이어졌고, 내 심장은 마치 어린 시절 환상적인 모험담이나 흥미롭게 각색된 신화,

혹은 짜릿짜릿한 탐정물이나 공상과학의 희망에 빠지게 하던 SF작품을 보던 때처럼 주체할 수 없이

두근두근거렸다.

 정말... 이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되새기며 뭔가 굉장한 미사여구든 강력한 한방이든 이 감동에

어울리는 표현을 하고 싶은데... 양민의 언어력이라는 게 얼마나 별 볼일 없는 것인지, 예술가들의

표현력이란 게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의 빠와라는 것만 느끼고 새삼 OTL이다.

 정말 굉장하다. 달리 뭐라 할 말이 없다.


 저런 표지조차 이 작품의 당당한 일부분이라는 걸 얘기하면서... 나같이 혹시나 저 구시대의 포스로 충만한

표지를 보고 일단 무시하거나 거부감을 갖거나 회피하거나 하는 엄 - 청 - 난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정말... 수퍼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수퍼히어로물에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수퍼히어로 작품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걸작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표지를 보고 구입을 꺼렸던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고 자시고도 필요없다. 무조건 사라. 꼭 봐라!





< 이미지 출처 : www.kyobobook.co.kr >



< 이미지 출처 : www.kyobobook.co.kr >



-때는 드디어 2차 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희망이 열리던 시기...

그러나, 세상은 이념의 전쟁에 빠져 허우적대고, 히어로들은 그동안 맞섰던 어떤 빌란보다 강력한,

냉전이라는 괴물과 맞닥뜨린다. 사상최악의 악당 앞에서, 히어로들은 스스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왜 이 작품이 저런 촌스러운 느낌 풀풀 나는, 구시대적인 표지를 달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이 작품이 다루는 시기가 바로, 저 시대인 실버 에이지의 여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 대전 후 냉전으로 들어가는 때, 소위 말하는 매카시 열풍으로 대표되는 이 미친 시기는

단순한 생쇼를 넘어 미국 사회 전반은 물론, 세계에까지 영향을 끼쳤고(한국에선 아직도 반공이면

장땡인 좀비급 개종자들이 넘쳐나는 불편한 진실...) 골든 에이지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새롭게 실버 에이지가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이 미친 광풍의 시대에서, 사상 최강최악의 빌란이라고 할 수 있는 냉전의 이념을 만나

골든 에이지의 영웅들이 물러나지만, 그 좌절과 고난을 발판 삼아 새로운 영웅들이 실버 에이지를

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참 기똥찬다!

 뭐랄까, 정말로 뭐가 역사이고 뭐가 수퍼히어로 뻥인지 모를 정도로 완벽하게 역사 속으로 녹아 든

수퍼히어로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보고 있는 작품이 수퍼히어로 그래픽노블인지, 근현대사 역사물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


-실버 에이지의 여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 작품은 실버 에이지의 시대를 연 대표 히어로들의 기원도

다루고 있는데... 정말 굉장하다! 아까부터 굉장하다는 말만 하고 있는데, 정말 그럴 수 밖에 없다!

 무릇, 대표 히어로들의 기원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한 작품으로 다뤄야할텐데,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치 개인들의 이야기처럼 다뤄지면서도 어지간한 기원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절묘하게,

그러면서도 그 기원들이 이 뉴프런티어라는 작품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수퍼히어로의 나라인 미쿡에서 만들 수 있는 현대판 신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정말 굉장하다! 진짜라니까! (^^)


-캐릭터들의 매력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굉장하다!

 완벽할 정도로 개성적인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솔직히, 줄기 스토리나 혹은 특정 캐릭터를 위해

이러쿵 저러쿵 왔다 갔다 거리는 어지간한 DC 히어로물과 비교한다는 게 미안할 지경.


-작가의 연출력이... 정말 굉장하다!

 아니,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예술의 수준인데... 이런 구시대적인 디자인의 그림들로, 그런 그림에 딱

어울리는 듯한 그 시절 느낌 충만한 장면들이지만, 실제로는 요즘 그래픽노블들이 반성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련되고 단순히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내용 텍스트와의 절묘한 조화로,

작품에 몰입시키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배트맨이 마샨 맨헌터를 협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배트맨이 한 거라고는 그저 갑자기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게 몇마디 던진 게 전부지만, 책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맨헌터가 되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배트맨에게 공포가 느껴진다. 덜덜덜~

 또한, 단순히 그림이나 대사가 멋지게 연출된 게 다가 아니다. 그림칸의 크기가 들쑥날숙한 게 아니라,

대체로 1.93:1 정도의 와이드 화면비(!)가 유지되도록, 그러니까 보통 한페이지에 그림칸이 3개가

있도록 의도한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연출과 이 와이드 화면비가 어우러져,

내가 그래픽 노블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에 절로 빠져 든다.

 이 말은... 애초에 작가가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컷을 정하고 배열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렇게 보여지길 의도하고 만들어나간거라는 건데... 정말 범인의 경지가 아니다!

 (의도한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국내에 정발된 이 작품은 특이하게 광택지가 아닌 비광택지에

인쇄되어 있는데, 이게 DC에서 의도한 건지 아니면 국내에서 의도한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가끔 아, 내가 그래픽 노블을 보고 있었지...라고 일깨워 주는 건 이 비광택지의 효능이다.

 정말... 몇번이고 이 말만 하고 있지만, 정말 굉장하다!


-암튼 간에 기가 막히다. 정말 굉장하다. 이 말뿐이다. ^^;;;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나(?) 이런 단체 게임에서는 심하게 버프 되는 수퍼맨이 좀 안습이고,

이 작품은 특히나 실버 에이지의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을 해야 하는 지라... 암튼 수퍼맨은 좀 안습.


-골든 에이지의 무시무시한 히어로들이 모여, 인류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면... 그리고, 이 작품의 시작에서부터 꾸준히 활약하는 보통 인간들이나, 마지막에 인용된

케네디의 연설문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느낀다.

 사실, 이 작품은 단순히 실버 에이지 히어로들의 여명이란 성격에서 끝나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실버 에이지 히어로들의 등장 시기가 단순히 그때라서가 아니라, 작품의 시대가 미친 광풍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것부터 이미 심상치 않지만, 존 헨리 이야기로 대표되는 자유와 정의의 나라 미국의 치부,

잘난 체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인류의 현실 그것도 노력을 덜해서 혹은 노력이 실패해서도

아니고, 처음부터 그런 현실을 개선하는 것은 원치 않는 제국과 기득권의 존재.

 2차 대전이 끝나고 잠시나마 희망을 품어 보았을지 몰라도, 인류는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다.

 그리고 그후로도 번번히 이런 저런 희망을 품어 보았을지 몰라도, 현실은 제국과 기득권들만이

배가 터지는 것도 모르고 주워 처먹고 있을 뿐, 세상은 시궁창이다.

 이 시궁창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갈 희망은 있을까. (다른 걸 몰라도, 51.6%의 한국을 보고 있자니,

적어도 이 나라에선 그런 희망은 없을 것 같다)


-최강의 적 앞에서 힘을 모으는 수퍼히어로와 인간들의 협력 플레이에서보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화성 탐사를 위한 인류의 준비나, 플래시 잡기 등의 모습에서...

좀 더 진정한 인류의 모습이 느껴진다고 하면 너무 시니컬한 걸까.

 내 생각엔 그것조차 너무 잘 봐준 것 같은데...


-그리하여 JSA(저스티르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를 넘어,

JLA(저스티스 리브 오브 아메리카)의 시대로...

(실제로 JSA가 여기서 종말을 고한다는 얘기는 아님... ^^;;;)


-가디언들이 모처럼 우주대악당의 진면목을 버리고,

히어로팀 코스프레를 하는 흔치 않은 작품. (^^;;;)


-이, 이거슨... 겟타로보!? (^^;;;)


-한가지, 이 작품 아니 이 정발본을 얘기할 때 빼놓으면 섭섭할 게 한가지 있는데... 그게 바로 주석!

 일반적으로, 수퍼히어로물은 한국에서 친숙한 장르가 아닌지라 '한국에서 수퍼히어로를 좀 좋아한다'라는

정도로는, 사실 이렇게 정발되는 수퍼히어로 그래픽 노블들을 볼 때 에로사항이 꽃피는 경우가 많은 게

보통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정발되는 수퍼히어로 작품들을 보면, 번역한 사람들의 주석들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그리고 때때로 꽤 많이 달리는 경우도 있을 만큼 주석이 일반적인데... 이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찬성하는 쪽은, 아무래도 작품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한국에서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여러가지 설명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쪽은, 주석이란 것은 보는 사람이 찾아보는 영역이지 그렇게 달고 또 달면 사족이라는 것인데...

 수퍼히어로 그래픽노블에 대해선 한국에선 아무래도 다른 분야의 책에 비해서 찬성 쪽의 의견에

귀가 솔깃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주석이 극도로 적은 편에 속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주석을 생각한다면,

꽤나 대담한 시도라고 인정해 줄 수 있겠지만... 위에서 수퍼히어로물에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좋을 작품이라고 얘기는 해놓았지만, 과연 이 정도의 주석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먹힐 수 있을지는?

 뭐,  이제 옛날과 달리 관련 작품이 국내에 많이 정발되지는 않았더라도, 인터넷을 뒤지면 관련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는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 뉴프런티어 본편 중, 초반 신문에 나오는 수퍼맨 대 배트맨의 대결 이야기는,

정발된 이 뉴프런티어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에서 해당 에피소드를 쉽게

(번역본으로) 찾아볼 수 있다.

겉표지의 포스(^^;;;)에 눌려서 이 작품의 맛을 보기 주저하는 분들이라면...

스토리, 분위기, 작화, 연출 등등 이 작품의 맛보기로 딱 좋으니 추천! ^^ ***

 

















*** 마지막으로, 정말 정말 잡담인 이야기.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새삼 부럽고 짜증나고 분노가 치밀었다.

 정작 매카시의 나라에선 그게 과거의 일이 되어 다양한 방법으로 회자가 되고 있는데 반해,

그 꼬봉짓을 했는지 벤치마킹을 했는지 했던지 멀고 먼 곳의 이 나라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반공의 유령이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니 말이다.

 더불어서... 미국에선 정말로 그 시절을 지나온 캐릭터들을 소재로 해서, 이런 멋드러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따지고 보면 현재까지 맹위를 떨치는 이 미친 반공은 매카시에 비할 바가 아니고(한국인 입장에선... ^^;;;),

그 시절 반공의 개 노릇을 하던 히어로 아닌 히어로들은 좀 많았나.

 굳이 그 반공의 개 노릇을 하던 애들 아니더라도 과거의 캐릭터들이 많은데...

 그런 과거의 캐릭터들이 현재에서 그때의 반공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을 만들어 본다는 건 왜 안 될까.

 뭐, 원인이야 많겠지. 반공으로 재미를 본 개종자들이 기득권에 널려 있는데다가,

뭣도 모르고 암 생각없이 그 개종자들 찬양하는 골 빈 51.6%의 해충들,

문화라는 것에 억지로 질 등급을 매겨서 저질이라고 죽이고, 검열로 죽이고, 별별 마녀사냥으로 죽이고.

그렇게 국민들의 자유로운 사상을 통제하고 억압해 온 막장 정부들...

 새삼 참 안 되는 나라라는 것에 다시금 한숨을 쉬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