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에도 만화에도 흥미가 떨어진지 오래라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와중에 오히려 더 강렬하게 와닿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의외로 고전 중에 이런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이 불새란 작품이다.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웠던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아톰, 블랙잭, 밀림의 왕자 레오 등등 그의 작품은 유명작 투성이이고,
볼수록 보는 맛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이 불새란 작품은 내게는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국내에는 학산문화사에서 예전에 발행했는데,
발행한 작품을 그때 모두 구입하지 못한 것이 정말 한스럽다. T T
어떤 때는 고대의 어딘가에서, 어떤 때는 미래의 어딘가에서,
어떤 때는 우주의 어딘가에서 등등... 시공을 초월한 우주 생명체 불새의 존재와
그 불새를 둘러싼 인간들의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국내 발행된 테즈카 오사무 시리즈의 불새 3권인 미래편은 흥미라는 수준을 넘어서,
어떻게 보면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까지 던져 주고 있다.
(뭐, 테즈카 오사무 작품들을 보면 그런 경우가 자주 보이긴 하지만... ^^)
서기 3404년의 지구...
우주에까지 삶의 터전을 확대했었던 지구는 그 번영이 급속하게 퇴화하여,
인류는 무기력하게 지하로 숨어들어 몇개의 대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 해, 전자 두뇌를 만들어 그 결정에 따를 정도...
대도시 메가로폴리스 중의 하나인 야마토의 우주사 마사토는
인류의 사냥에 의해 멸종된 부정형 생물 무피인 타마미를 숨기고 살다가 발각되어
야마토를 등지고 도주한다.
그들을 찾아 죽이려는 야마토의 지배자 전자두뇌 할렐루야와 그 심복 록은,
그로 인해 다른 메가로폴리스인 렌구드와 트러블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야마토의 전자두뇌 할레루야와 렌구드의 전자두뇌 다뉴브의 의견이 충돌,
두 전자두뇌는 두 도시 간의 전면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한편 도망친 마사토와 타마미는 세상을 버리고 은둔한 과학자 사루다 박사에게 구조되지만,
그들을 뒤쫓아 온 록에게 메가로폴리스 간의 전쟁에 대해 듣게 된다. 전쟁 선포의 순간,
지구상의 모든 메가로폴리스가 동시에 폭발하고 지구는 죽음의 방사능에 뒤덮인다.
그 여파로 사루다 박사의 돔에도 문제가 생기고...
갑자기 나타난 신비의 존재 불새를 만난 마사토는 죽지 않는 몸이 된다.
사루다 박사는 방사능에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세포의 비밀을 타마미의 희생으로 알아내지만,
우주로 탈출하기 위한 록의 욕심에 의해 그 비밀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결국 마사토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고... 지구에 홀로 남은 마사토는
무수한 세월 동안 외로움에 사무쳐 로보트도 만들고 인공 생명도 만들어 보지만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지구의 생명 진화 과정을 처음부터 되풀이 하기로 결심한다.
마사토가 바다에 뿌린 탄소와 산소와 수소 덩어리는 생명의 진화를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고,
그 육신은 풍화되어 사라졌지만 초월적인 존재로서 마사토는 생명의 진화를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요즘에 SF 작품들을 보면 등골이 오싹한 수준을 넘어서 진정으로 공포스러울 때가 많다.
옛날에 SF작품을 봤을 때는 비교적 희망적인 이야기나 긍정적인 기대 등을 갖고 봤지만,
이제 그런 미래 작품에서 그리던 21세기가 되고 보니 전혀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 오기 때문이다.
SF작품들에서 긍정적으로 기대했던 부분들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거나 상당 부분 부담을 덜어주는 대체 로봇 같은건 존재하지 않고,
소시민들은 그 시절보다 더 불안하게 더 혹사 당하며 희망도 없이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세계 인류가 한마음이 되어 이상적인 인류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어쩌구 하는건 다 개소리,
현실은 나날이 추악하고 더러워질 뿐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보단 더욱 더 족쇄가 되어 숨통을 조르고...
그에 반해 부정적인 예측 부분들은 기가 막히게 실현되고 있다.
SF 작품들에서 그리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는 본질적으로 대부분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
무기력한 인류, 개인의 존엄이나 자주성 같은건 귀찮다고 버린 채 정치에 관심 없는게 자랑인 소시민들,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기보다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암 생각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언론을 이용해 최신 기술로 구현되는 빅브라더의 존재 또는 그 성장.
출산율 저하, 우울증에 의한 자살, 극대되는 빈부격차 등등...
그래서인지 요즘에 와서 다시 보는 SF 작품들은 정말 소름 끼칠 때가 많다.
이 불새 미래편에서 그린 디스토피아적인 인류의 모습은 결코 21세기의 지금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학산문화사와
Tezuka Productions에 있습니다 ]
이것이 불새 3권, 미래편이다.
겨우(?) 전자두뇌 따위에게 모든 것을 맡긴 인류...
전자두뇌 따위가 인류의 구세주가 되어 있다.
미래에 멸망하는 인류 혹은 앞선 문명 존재의 멸망을 그릴 때 나오는 패턴 중 하나가,
인간이나 생명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고,
다른 존재나 기계 등에게 그 결정을 맡겼다가 그로 인해
멸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투표나 유권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암 생각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걸 볼때,
멍청하고 문제 덩어리인 사람도
이런 저런 이유나 사탕발림에 그냥 찍어주는 상황을 볼때,
그런 디스토피아가 되는 과정으로 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하지 못 하고,
심지어 기계의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
똥인지 오줌인지도 모르고 암 생각 없이 투표 하고,
강제로 권리를 침해 당하는걸 즐기는 사람들과
강력하게 오버랩 된다.
심지어 개인의 연애사까지 기계에 좌우된다.
전자두뇌의 꼬봉은 저런 결정에도 오케이다. 핑신~
웃을 수 만은 없는 장면인데...
왜냐하면 현실의 한장면을 보는듯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로서의 권리 같은건 스스로 버린 채,
자신이 지지하는 무언가를 마치 종교나 된듯이 찬양하고 따르는 모습...
바로 지금 모습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이나 판단 같은건 하지도 않고,
그냥 암 생각 없이 지지하고...
그러면서 똑같은 짓을 하는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비난한다.
풋.
정말 SF작품들을 요즘에 와서 보다 보면,
유토피아적인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공상소설이지만,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예언서 같다.
심지어 애인까지 버리고,
타인의 삶이나 생명까지도 짓밟던 꼬봉 록은,
막상 자신이 죽게 되는 상황이 온다니까
그렇게 열렬히 따르던 전자두뇌에게 반항한다.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닌다.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다 자신의 밥줄과 관련해서 어긋나면
갑자기 돌변하는 그런 모습, 지금도 자주 보이는 거니까.
스토리상 악당의 꼬붕들에게 이런 모습이 자주 보이는건 우연일지...
그것도 모자라 자기만 조용히 도망치려고 한다.
이것도 현실이다.
이미 역사에서 위정자들이 저런 모습을 보인게 다반사에,
전쟁에서 시민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안심시키고 자신들만 튄다던가,
사람들을 끌어 모아 침몰하는 배에 태우고는 자신만 이득을 챙겨 도망치는 사기꾼들...
어린애일때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봤을 것 같다.
세포 속의 무한 구성과,
이 우주의 무한 구성...
과연 진실은? ^^
이 작품에서 마사토에 의해 새롭게 시작된 생명의 진화는
포유류가 아닌 괄태충에게 맡겨 진다!
사실, 포유류가 딱히 지금 인류처럼 번성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
진보해 가는 괄태충에게 조물주로서 조언 하는 마사토...
예나 지금이나 요런 장면은 진리다.
자기만은 그런 머저리들과 다르다고 자신하는...
그러고는 뭐 마무리는 꼭 그렇게 되지.
외국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똑같은 주제에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인 정치인들,
안전불감증에 걸려 남들 다 다쳐도 자기는 안 다친다는 용가리통뼈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일어나는 여러 크고 작은 사고들...
진화해 가는 괄태충의 이런 편가르기와 차별, 트러블...
현실에서도 여러 이유로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과연 진화란 무엇이고,
인간은 왜 진화하며 또 그 진화로 얻는 것은 무엇걸까?
인간이 지금과 같이 진화한 것은 긍정적인 방향인가?
조물주가 설정한 인간의 본성은 과연 어떤 것일까?
추악한 본성을 위선으로 감싼 채 물고 뜯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런 위선을 벗어 던지고 추악한 본성을 드러낸 채 물고 뜯는 것일까.
불새란 작품에서
계속적으로 일관되게 나오는게 불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리고 그 욕망은 언제나 비극을 불러 온다.
과연 저기서 말하는 잘못이라는건 어떤 걸까.
인간은 꿈과 희망과 사랑이 가득하게 살아야 하는게 잘못이 아닌 것인가,
추악하게 남을 물고 뜯으며 자신의 배를 불리는게 잘못이 아닌 것인가.
조물주는 과연 인간에게 무얼 바라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뒤로 한 채,
참 멋진 엔딩 장면이었다.
의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열쇠 구멍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류는 생명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한쪽에선 만화의 신이라고도 불리우지만,
그만큼 어두운 측면이나 문제점도 갖고 있는 테즈카 오사무...
그런 테즈카 오사무 본인에 대한 평가나 생각은 다들 다를지 몰라도,
그의 작품들은 한번쯤 볼 만한 재미나 생각할 꺼리를 던져 주는 것 같다.
불새 전집을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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