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연재 당시부터 한국에까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죽일 수 있는 초자연적인 사신의 노트를 손에 넣은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가 그 노트의 힘을 이용하여 키라라는 신세계의 신을 꿈꾸며
악당들을 살해해 이 세상에 정의와 선이 존재하는 이상향을 만들고자 하지만,
의문의 탐정 L이 그런 야가미 라이토, 키라를 막기 위해 도전하고,
야가미 라이토와 L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대결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름이 적힌 사람이 죽어 버린다는 초자연적인 사신의 노트라는 중요 아이템이 등장하고,
작품 내에서도 그 사신의 노트와 연관된 초자연적인 스토리가 펼쳐지긴 하지만,
단순히 그런 판타지의 이야기가 주가 아닌,
현실의 인간들인 야가미 라이토와 L이 펼치는 두뇌 싸움이 호평을 받았다.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는 뭐 다양하게 넘쳐나지만,
극단적으로 분류하면 키라에게 동조하는가, L에게 동조하는가...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키라 vs L의 대결이 끝난후,
소년지스럽게 L의 후계자를 내세워 다시 대결이 펼쳐지는 2부는 없는셈 치는 작품이다.
내게 있어 이 작품은... 선과 악의 대결이니 정의니 악이니 뭐 이런 이야기보다는
힘 있는 자들이 인간이 구축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계적인 규모로 쌓은 기득권에 대해,
그런 기득권이 만든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느끼던 비기득권의 일개 소시민이,
기득권이 구축한 기존의 시스템이 아닌, 초월적인 수단이라는 사신의 노트를 가지고 도전한,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몹시 극단적으로) 개선하고자 했던 비기득권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했던 기득권의 싸움이었다.
야가미 라이토... 비기득권이니 일개 소시민이니 하는 얘기가 쉽게 와닿지 않는 캐릭터는 분명하다.
인류를 서열로 매기면 최상위권은 보장되어 있을 것 같은 뛰어난 두뇌와 육체,
범인의 경지를 넘어선 정신력과 역시 최상위권의 외모,
그리고 일본 같은 선진국의 경찰 간부를 부친으로 둔 조건 등등...
일반적인 의미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을 만한 재원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기득권층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야가미 라이토 개인이 아무리 잘 나고 아무리 뛰어난 술수를 사용한다고 해도,
시스템에 위험이 올 정도의 대사건이 일어나지 않는한(예를 들어 대규모 전쟁이나),
야가미 라이토가 진정한 기득권층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출세하고 노력해 봐야 기존 기득권층에게 이용 당하는 장기말 정도가 되는게 고작인 거다.
진정한 기득권층이란 야가미 라이토처럼 선택받은 재능의 사람들을 취향대로 부려 먹으며
소시민들의 희생 위에서 탱자 탱자 사는걸 즐기는 정도인 것이다.
L... 이 자는 누가 뭐라 해도 초월적인 수준의 기득권에 속한다.
개인적인 능력이나 뭐 타고난 재능 같은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L은 기존에 구축되어 있는 인간 시스템의 지배층에 속해 있으며,
그 시스템 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구사할 수 있다.
정의니 선이니 하는 개념도 그런 기득권의 시스템 기준으로 판단할 뿐이다.
L이 시스템에 안주하는 철저한 기득권이라는건 작품 내에서 질리게 나오지만,
L의 존재 자체가 이미 그걸 보여 준다.
진정으로 정의와 선을 생각한다면,
세상에는 고작(?) 흉악범들의 연속 죽음 같은 거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국가적인 혹은 국가를 초월한 규모의 부조리나 문제는 얼마나 많은가.
L이 미국 같은 강대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의혹 같은걸 파헤치는가,
대기업이나 국가 기관의 횡포에 당한 피해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가.
하다 못 해 흉악범들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쓰기를 했나?
전혀 아니다. L은 그저 넘치는 기득권에 취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 해 장난으로 탐정질을 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즉, 탐정일이라는게 범죄자들을 잡아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닌,
좋은 머리와 주체 못할 돈으로 자신의 취미 생활을 하는 차원인 것이다.
(L이 그런 기득권으로 소시민들을 열심히 뜯어 먹는 시도를 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나,
L이 해결한 사건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결국 이 작품 자체는 선이니 악이니 거창하고 추상적인 차원이 아닌,
인간세상의 기득권을 부수느냐 지키느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동물?) 역사 그 자체다.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기득권이 구축되고,
힘 없는 자들은 그런 기득권에 눌려 지내고,
다른 힘 있는 자들은 그런 기득권에 도전하기도 하고 거기에 성공해 그 자리를 뺏기도 한다.
동물 무리로만 봐도 힘 있는 개체가 리더가 되고 기득권을 누리지만,
약해지면 밀려난다.
인간 역사에선 힘 있는 나라가 힘 없는 나라를 먹어 버리고 단물에 취하지만,
노쇠해지면 신생 나라에 먹히는 때가 온다.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나도 충분하던 시대와 달리,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고 시스템의 기득권이 거대해졌다는걸 실감한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제 (큰) 국가적인 규모의 대결은 전쟁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표현되지만,
이 역시 기존의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마들어지고 유지되고 사용되는 수단이란 점은 전쟁과 같다.
[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대원과 集英社에 있습니다 ]
스스로 정의라고 말하는 L.
L의 정의는 과연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키라가 살해할때 필요한 것이 대상물의 이름이라는걸 알게된 후,
서슴없이 L이 제시한 방법은 가짜 경찰 수첩이었다.
경찰 신분을 사칭하는건 중죄이며, 시스템에 있어서도 혼란을 일으키는 행위다.
그러나, L은 서슴없이 그 수단을 채택한다.
가짜 경찰수첩 정도는 사실 애교도 아니다.
키라를 잡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유 아래에서,
L은 기득권이 시스템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들을 무시한다.
도청, 도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아무 상관 없으며,
그것이 법에 저촉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 법에 저촉되고 말고는 L에겐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로 인해서 목적을 이루는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느냐가 관심 있을뿐
(예를 들어 도청을 한다는 불법을 저지르는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게 아니라,
혹시 도청이 발각되어 목적에 문제가 생길까...하는 부분에 말이다)
수단이 불법이냐 아니냐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용의자에 대한 감금과 고문에 가까운 수사 방법도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
범죄자라고 해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용한다.
아니, 자기가 써먹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된다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아오안,
처벌을 피하도록 해주고는 이용해 먹는다.
그 자신은 기득권의 최상층에 위치해서 실컷 즐기며,
시스템의 사소한 제약 같은건 모두 초월한 초존재의 힘을 즐긴다.
그러는 주제에 무슨 정의니 선?
백보 양보해서 L에게 어떤 이상적인 목적이 있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그런 불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L이 탐정 일을 하는게 시스템의 부조리나 기득권의 횡포를 개선하기 위한 것도 아닌,
그저 취미 생활인 탐정질...일뿐이니 말이다.
기득권의 인식이란게 어떤건가 보여주는 극명한 대사가 아닐까.
L의 후계자인 N, 니아 역시 L에 비해서 나을게 없는 부정적인 기득권이다.
키라에 대해서 증거를 잡아서 키라를 몰아가는 것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필요할 때에는 단정 이상의 확신범이 눈앞에 있어도
저런 궤변으로 보호해 주며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한다.
살인자의 죄값도 자신의 이익과 목적 앞에선 의미가 없다.
기득권의 절대 힘을 가진 존재라는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시스템의 제약이란게 무의미한...
특히나 압권인 부분이 이렇게 사형수를 몰모트로 활용하는 부분이다.
시스템이 정한 사형수의 죽음은 당연하다는 듯이 본다.
인간의 목숨조차 자기 멋대로 정한 값을 매기고 저울질한다.
같은 흉악범을 죽여도 사형이 정당하고 키라는 안된다는 건,
사형이라는게 시스템의 결정이며 그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뿐...
기득권이란 게 뭔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니 정치가니 하는 것들이 무슨 진정한 정의나 선을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시스템을 사용한다는게 여기서 드러난다.
이외에도 뭐 키라의 공포가 계속되자 방송 매체나 기업들도 대놓고 키라를 지지한다던가 하는 거...
만화적 허구라고 보기 어려운게 이미 우리는 적잖은 실제 사건들을 겪어 왔다.
일제가 조선을 집어 삼키자 일제를 찬양하던 언론이나,
국가 기관의 변화에 따라 아무런 줏대나 상식적인 판단 없이 그냥 만세를 부르며
따라 가는 하위 기관과 언론들, 아무 생각 없는 우민들...
어제에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간결하지만 그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적인 좋은 세상 만들기 방법이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 이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가 되어야할 게 구현이 안 되니,
혹은 차별적으로 적용이 되니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적어도 저런 목적을 가진 키라는 그 어떤 神보다도 신에 어울린다.
그 어떤 국가나 기관에 비해서도 우위에 있어 보인다.
저런 목적을 갖고 추구하는 키라라면 당장 어떤 신을 없애건 어떤 정부를 없애건 불만 없다.
키라라는 존재가 실제로 나타난다면 저 장면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키라에 의한 효과는 일시적이니 의미가 없다고? 천만에!
어차피 지금의 시스템이 굴러가는게, 구성원들의 이상적인 도덕이나 양심 덕분이 아니다.
조금이나마 기득권이 있는 것들은 시스템을 이용하고 멋대로 고쳐 나가는 것이고,
그런 힘이 없는 자들은 그런 힘을 원하거나 어쩔 수 없이 순응하거나...이다.
그냥 순응하는게 아니다. 각종 처벌과 제약, 불이익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붕대한테 묻고 싶다.
그럼 지금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평화가 이루어져 있냐고.
아니, 이상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도 시스템도 노력을 하고 있냐고 말이다.
저 말은 이 말과 똑같다.
법과 처벌에 의해 이루어진건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고 말이다.
지금의 법과 처벌, 혹은 기득권에 의한 힘을 없애면,
그래도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라는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키라에 의한 제약이냐, 기존의 기득권에 의한 제약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키라 개인의 독단에 의한 것보단,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법과 시스템은 의미가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것이야말로 기득권에 의해 세뇌당하고 이용당하는 우민이라고 자랑하는 거다.
법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사용된다.
이미 태생적으로 철저히 기득권에 의한 도구일 뿐이다.
투표 등 국민 주권을 행사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국민은 딱 그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다.
소수의 국민들은 깨어 있을지 몰라도,
폭넓고 체계적인 우민화 정책과 언론 장악 등을 통해서(물론,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
보다 다수의 국민들을 멍청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다.
다수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멍청한 소리이다.
역사에 어둠의 이름으로 남는 정부나 국가 수장들 중에는
다수결로 합법적으로 독재의 한발을 시작한 경우들이 있다는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암튼... 그래서 난 데스노트의 1부 마무리까지만 마음에 들었다.
야가미 라이토와 L 어느 쪽이 정의냐 뭐 이런 차원의 얘기를 넘어서,
기족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바람직한 엔딩이었는데... 역시 소년지는 적당한 때 끝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기득권에 도전하여 스러져간,
역사의 순수한 도전자들에게 경의를...
개심할 수 있는 흉악 범죄자가 있다 없다라는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 어떤 흉악한 범죄자를 개심할 수 있겠다라고 판단하고 시도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 정도는 져야 하지 않겠나.
흉악 범죄자의 개심에 노력하는 것 자체는 부차적인 얘기다.
그런 노력을 하기 전에, 흉악 범죄자의 개심 시도로 인해서 혹시나 피해를 볼 선량한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하고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기본적인 부분인데,
흉악한 범죄자의 개심을 논하기에 앞서서,
그런 흉악한 범죄자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대책을 먼저 논해라.
순서가 바뀐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그 부분은 완전히 실종된 세상이다.
'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렌라간의 격투는 어떤 느낌일까? - 천원돌파 그렌라간 (0) | 2009.12.03 |
---|---|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필독서 - 검은 사기 (0) | 2009.09.17 |
오랜만에 다시 보니 시사 드라마 - 개구리 왕눈이| (0) | 2009.09.15 |
이번 인류는 생명을 올바르게 쓸 수 있을까 - 불새 3권 미래편 (0) | 2009.09.08 |
엉뚱한 번역과 해적판에 대한 추억 - 베르세르크, 타이의 대모험 (0) | 2009.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