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이것이 SF 대서사시! - 일리움(ILIUM), 올림포스(OLYMPOS)

베리알 2012. 2. 10. 10:39


추천이 많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전공 서적을 연상케 하는 외모(?)에

차마 시작을 못 하던 SF 소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댄 시먼즈의 일리움과 올림포스다.





<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



일단 외형이 굉장(!)하다.

될 수 있는한 널널하게 분책해서 돈을 더 뜯어내려는 악덕 상술이 판을 치는 출판계인데,

이 책은 전공서적급의 외형을 감수하고라도 온전한 양장본으로 출시되었다.

 조그만 소설책 크기가 아니라, 전공서적급 크기에 두권 합쳐 수천 페이지나 되는 외형은

그래서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장점은 아무래도 가격이 낮아졌고 책의 분위기가 살고 산만하지 않게 집중이 된다는 점...

 단점은 역시 아무데서나 쓱 쓱 펴놓고 읽기는 좀 힘들다는 거... ^^;;;



 SF와 신화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은 아마 굉장한 재미를 줄 것 같다.

 일리움에서 올림포스까지 두권에 걸친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대서사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데...

책 내용이나 호평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으니 대충 생략하고...


 이 작품을 재미있게 즐기려면, 다음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② 상식 수준의 양자역학 (교양과학)

③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작품에서 오르푸와 만무트가 괜히 고전문학 덕후인 게 아니다. ^^)


물론, 더 확장할 것들이 많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세가지는 이 정도라 하겠다.

1번의 경우... 그리스 신화에 대한 상식으로도 어느 정도로 해결이 되지만,

아무래도 일리아드를 읽어 놓는 게 더 좋을 것이다(사실 일리아드를 읽을 정도면

그리스 신화에 대해선 상식 이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지만... ^^).

 이 책의 초반을 넘기기 어렵다는 얘기들은 사실 여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멀쩡한 놔두고 누구 누구의 아들이라느니 뭐시기한 거시기라느니 등등의 인물 호칭에서

짜증을 느끼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일리아드의 등장 인물들에 대한 사전 토대가 있는게 좋겠다.

 나같은 경우, 그리스 신화도 조금 알고 일리아드도 예전에 읽었었기에 등장 인물들이 줄줄 나와도

별 신경 안 쓰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반대로, 괴상하고 낯선 이름들에 이상한 호칭들까지 더해진

낯선 세계관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면 초반이 괴로운 것과 같은 맥락이겠다.

 2번의 경우... 아무래도 나노나 양자들의 세계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정도는 알고 보는 게

작품을 보는 몰입도를 높여줄 것이다. 단순히 순간이동이니 뭐니 하는 정도로 보는 것보다 말이다.

 3번의 경우...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는(그러나, 실제로는 이 작품의 최고의 재미거리!) 모라벡

오르푸와 만무트의 대화의 이해는 물론, 작품 내 최종보스들(!)의 존재와 관계를 이해하는데도

더 도움이 된다. 사실은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를 쓰는데 소재가 된 실제의 난파 기록을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책은 한국에 나와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판타지 세계관 구축이라는 게 있을 수 없기에(이 계열의 갑은 아무래도 톨킨의

반지의 제왕 세계관이겠지만, 그조차도 북유럽 신화에 많은 기반을 두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차라리 존재하는 역사나 신화를 차용하는 경우는 의외로 몰입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읽는 사람이 별도의 세계관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을,

작품에 대한 감상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작품 역시 일리아드를 소재로한 부분들은 (일리아드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몰입감을 준다(반대로, 일리아드가 뭥미?...라면! ^^;;;).


 책 앞의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등장인물표는 그래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설명이 좀 잘못되거나 오해받을 수 있겠다 싶은 경우도 있고, 굳이 등장인물에 이름이 있어야 했나 싶은

인물도 있는 등등... 등장인물표에 목숨 걸지 않는 게 좋을 득...



 작품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의견들을 많이 보았는데,

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신들조차 초월한 최종보스들의 최종 대결이

우주를 뒤흔드며 벌어지는 것도 두근두근하긴 하겠지만... ^^

작품 내용이 내용인지라, (제작비 많이 들인) 드라마나 영화 시리즈로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작품 전체적으로 다 마음에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덩어리라면

역시나 만무트와 오르푸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저 러닝 타임 때우기 위해 혹은 감초로

처넣는 그런 개그콤비와는 차원이 다른 이들의 존재감은 작품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책들의 부제, 즉 일리움의 경우 "신들의 산 올림포스를 공습하라",

올림포스의 경우 "신들로부터 불과 지식을 훔치다!"...도 눈여겨 볼 장면들이다.

 일리움에서 인간들이 신들의 산 올림포스를 공격하는 장면은 무지랭이 인간인 나로선

짜릿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던 부분이었고, 올리포스에서 신들로부터 불과 지식을

훔치는 장면 역시 내가 다 성취감을 느꼈으니까...

 특히나 맨날 으시대고 찌질대고 인간알기를 개X으로 아는 오만한 신들을,

아킬레스가 관광시켜대는 장면은 여태까지 그 어떤 신화 소재의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던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각종 신화들을 볼때마다 인간 알기를 뭣으로 아는

성격 더럽고 짜증나는 오만한 불멸의(이런 표현은 개나 소나 신들이라면 신나게 쓰지만,

정작 정말로 불멸은 거의 없다) 신들 보는 게 항상 불만이었는데, 그런 신들을 신나게 담그는

필멸의 존재의 활약은 아주 그냥 죽~여줬다. ^^



 암튼 SF 혹은 신화 소재의 작품으로 근래에 이 정도로 몰입한 작품이 없던 것 같다.

 신들의 전쟁(영화 아님... ^^)이 기대만큼 재미가 없어서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과는 대조적...






 







*** 잡설 ***


-명성대로, 올림포스의 오타나 오류가 장난이 아니다.

대중 대상의 상업책으로서 이런 정도의 경우는 처음 겪어 본다.

초판 발행에 초판인쇄라고 되어 있는 점이, 수정될 기회가 없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는데...


-대체로 그리스 신화, 특히 일리아드를 기본으로 한 설정의 작품이고

실제로 거기거 따온 장면들도 많지만, 작품만의 재구성인 부분들도 여럿 있으니,

이 작품을 보고 일리아드나 그리스 신화를 접수했다!...라고 외치는 건 위험하다. ^^


-전연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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