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진짜 SF만화가의 진짜 SF만화 - 문로스트 (MoonLost)

베리알 2011. 8. 14. 09:05


  만화를 옛날부터 많이 봐왔기는 하지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는 의외로 별로 없다.

이유는 뭐... 워낙에 내 기억력이 형편없는 탓이 크다. ^^;;;


  하지만 그런 나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기억되는 작가들이 있기는 있고...

그중에서도 미소녀를 환상적으로 그려서나 혹은 취향의 H씬, 예술적인 개그나 기타 다른 장점들로

인해 기억하는 작가들 외에, 특정한 장르의 장인(?)으로 기억하는 작가들이 있으니...

 그 중에 SF의 장인으로 기억하는 작가가 바로 호시노 유키노부(星野之宣 / ほしのゆきのぶ)다.


 내 기억으로 엄청난 길이의 장편 작품은 없었고(블루 시리즈가 그나마 길었던 것 같다),

짧거나 혹은 단편들이 많았던 탓인지 옛날부터 한국에 페이지 채우기 위한 땜빵으로 좀

알려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땜빵 작품들 중에 멋진 작품이 많았는데 이 작가의 작품들도 단연 발군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래에 작가의 작품들이 국내에도 정발되고 있는데, 이번에 얘기할 것은 그중에서도

문로스트(Moon Lost)라는 작품이다. (2권 완결)





< 이미지 출처 : www.kyobobook.co.kr >


(줄거리)

 달에 아르테미스 기지를 건설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

관계자들에게 급한 소식이 들어온다.

공룡을 멸망시켰다는 소행성보다 100배 이상 큰 소행성이 지구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

 남은 시간은 단지 48시간뿐인 상황에서 인류는 브레인월드 이론에 희망을 걸고,

인공적으로 블랙홀을 만들어 소행성을 소멸시키기로 한다.

 블랙홀은 성공적으로 만들어져 소행성을 갉아 먹고 그 진로를 바꾸는데 성공해

인류는 구원받은 듯 했지만... 소행성의 바뀐 진로는 새로운 비극을 낳고 만다.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맨날 하늘에 떠 있으니 별 거 아닌 것 같은 게 달이지만, 실제로 지구의 환경을 안정화시켜 생물들의

진화를 뒷받침해 온 것이 바로 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지구인들은 소행성을 없애기 위해 신이론을 사용해 인공 블랙홀을 만들어 내지만,

이는 예상치 못 하게 소행성이 달에 충돌하게 만들어 버리고 지구는 달이라는 위성을 잃고 만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후폭풍을 받게 되는데...

 언뜻 생각하기 어렵지만, 달은 단순한 위성의 의미를 넘어서는 지구의 반려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달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생물로서 지구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우연들이

거짓말처럼 겹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듯이, 지구 주변의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달과 지구가

지금과 같은 사이를 유지했기에 지금과 같은 지구가 있을 수 있던 것...

 작품에서 달이 사라진 후 일어나는 비극들의 묘사는 결코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만 할 수 없다.

 파괴된 달의 파편이 지구로 떨어지는 것 정도야 당연한 거고, 지축이 고정되지 못 하고 흔들리게 되는데서

오는 문제점이나 여태까지 작용하던 달의 인력이 사라진 영향 등등...

 인류 문명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지구에서 생물의 존재가 리붓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


-작가의 작품 스타일은 보통의 만화가들과는 차이가 크다.

보통 SF만화라고 해봐야 교육용 만화가 아닌 이상은 그저 SF를 배경으로 이용하는 정도에 그칠 뿐인데,

작가의 작품에서 SF는 도구의 수준이 아니랄까.

 마치 SF소설가들의 걸작선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로 SF만화의 정체성이 남다르다.


-이 만화를 보면 작가가 반미주의자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오해일 수도 있다.

(물론, 작가가 실제로 미국을 싫어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알겠지만, 작가는 SF의 거장들이 보통 그렇듯이 인류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를 날리고 있는데 이것이 문로스트에서는 미국이라는 수단으로 구현되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기가 막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게 현실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려 기후가 안정되지 못 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자전축의 고정이 필요한 상황... 그전까지 살던 기후에 자기 나라가 돌아갈 때까지 고정을

멈춰달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외침일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이기주의라는 말이 아까운

사악한 범죄일 수도 있는 것.

 작품에서 미국은 북미 대륙이 극지로 변해 버렸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살만한 땅인 알래스카로

수도를 옮겨 간다. 미국 입장에서는 당장 자전축이 고정되는 게 싫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이란 지구에 기생하는 일개 나라의 입장이 아니라, 지구에 사는 생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구 자체는 생물들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을지도 모르고 생명이 태어나고 절멸하고 하는 것도

그저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는 당연스런 일일지도 모르지만, 당장 살고 있는 생물들은 다르다.

 그저 극지방이 열대지방이 되고 하는 그런 변화가 한번 있는 게 아니다. 자전축이 고정되지 못하면

기후의 끝없는 변화가 계속된다는 것... 지구온난화 정도(?)를 벌벌 떨며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데,

기후가 끝도 없이 계속 바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나라에 유리한 자전축 고정을 기다리기 위해 전지구적인 자전축 고정

프로젝트를 대놓고 방해하고 심지어 군사 위협까지 동원하는걸 보면 과연 미국이군!...싶다.

(그러고보니, 예전과 달리 근미래를 그리는 이런 SF 작품에서 그런 막장 대국에 미국뿐 아니라

새롭게 중국이 등장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아예 먼 미래 배경에선 중국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경우도 나오고...)


-하지만, 위에서 말할 것처럼 이는 단순히 미국이 개아들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이니까 가능한 것...일 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강자로서의 횡포,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

그 어떤 생물과도 다른 이기심과 잔혹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란 생물에 대한 고찰 등등...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과거로 통하는 시간의 구멍을 발견한 인간이, 고작해야 그 과거의 구멍으로

현대의 폐기물들을 보내버리는 수익 사업을 하겠다는 발상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인간답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경우도 있을 정도다.

 암튼 현시대에 있어서 미국만큼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려낼 강자의 괴물도 없으니 말이다.


-사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 자체가 그렇다.

작품에선 대충 아릅답게 마무리하고 말았지만, 이게 어디 그럴 일인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수많은 작품들에서 지구를 자기가 먹으려고 혹은 자기들 좋을대로 이용하려는

악당(?)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제 아무리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그 악당 외계인의 짓을 지구인이 저지르고 있을 뿐이다.

 달이 사라졌다고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를 달 자리로 끌고 온다는 발상...

(이 작품에선 그 에우로파에서 생명체까지 발견되는 설정!)

 차라리 우주괴수와 인간이 생존을 걸고 벌이던 우주적인 전쟁이 나오는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에서

지구인이 우주괴수를 전멸시켜도 좋은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이를 무시하고 나아가던 장면이

훨씬 순수해 보일 정도로 극한의 지구인 이기주의를 보여주니까.


-브레인월드 이론...이라고 얘기하면 굉장히 낯설수도 있겠는데,

그러면 M 이론이나 초끈 이론이 출동하면 어떨까? (^^;;;)

 작품에서 등장한 브레인월드 이론은 사실 초끈 이론의 다음 Ver이랄 수 있다.

 초끈 이론은 너무 유명한가... ^^;;;

 초끈 이론은 우주의 존재를 설명할 근원적인 이론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프로토 타입 이론 중 하나다.

흔히들 기존에 존재하던 각종 힘, 중력이나 전자기력 등의 다양한 힘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대통합 이론이라고 하는 걸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브레인월드 이론은 M 이론, 즉 멤브레인 이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초끈 이론에선 끈의 진동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을 막의 진동으로, 그리고 우리 현실보다 고차원의 세계가 막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정도로밖에 얘기할 수 없을만큼 내가 아는 것도 없고 쉽게 설명할 수도 없다. ^^;;;

 암튼 작품을 위해 막 만들어낸 이론은 아니라는 거...


-이런 미래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중력 위상 제어기 같은 것인데,

작품에선 이런 미래의 이론을 사용해 중력 위상 제어기를 사용하고 있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


-사실 고차원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쉽게 등장하는 예 중의 하나가 차원의 벌레다.

예를 들어 평면으로 된 2차원의 세계에 사는 벌레가 있다고 한다면, 이 벌레가 그 세계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높이라는 개념으로 올라올 수 없지만, 벌레는 그런 개념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거... 하지만, 위에서 2차원의 벌레를 내려다 보는 인간은 그 벌레가

인지하지 못 하지만 존재하는 세계에 있는 것이다.

 4차원의 세계에 사는(3차원 + 시간) 인간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극소수의 천재들이 상상으로

구현하는 그 이상의 차원 세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 하고 확인도 못 하고 있지만, 고차원의 세계는

존재할 수 있다는 거...

 어쨌거나 결론은 복잡한 이야기다는 것? ^^;;;


-자연계의 힘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평을 받는 중력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유일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적인 규모가 되면 모든 걸 지배하는 것은 중력뿐이다.


-암튼 이 작가의 작품들은 정말로 매력이 있다. 긴 작품이 없다는 것도 매력 중 하나이고... ^^;;;


-SF를 그저 배경으로만 이용하는 그런 만화가 아니라,

정말로 SF의 거장들의 작품이 만화로 구현된 듯한 그런 진정한 SF 만화를 만나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하는 작가와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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