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책을 보는데 문득!

오랜만에 본 고우영의 서유기. 그리고 캐릭터들에 대한 잡설 - 고우영 서유기

베리알 2014. 7. 30. 18:02



 한국 현대 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인 고우영 화백.

 그분의 많은 작품 중 하나인 고우영 서유기를 생각난 김에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나 재미가 있다는 건 아무리 말해도 사족일 뿐이고... ^^;;;


 원작을 베이스로 한 고우영 화백의 작품들 중에는 원작에서 거의 제목만 빌려온 작품도 있는가 하면,

원작을 잘 따라가면서 고우영님의 재미로 재구성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은 방대한 원작에서

일부만 따왔고, 또 고우영 화백 나름대로 변형도 많이 시키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서유기라는 작품이

갖는 매력은 잘 표현하고 있는 이색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

-이 작품으로, 고우영 화백이 돌아가시고(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시간이란 참...)

얼마 뒤에 자음과모음에서 내놓은 판본이다.


-원래, 고우영 화백의 작품들을 보면 캐릭터들이 참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게 인상적이다.

초인처럼 보여도 인간적인 약점이나 고뇌를 인간적으로 갖추고 있는데다가,

거기에 미치지 못 하는 일반인들은 현실의 찌질하고 아둥바둥하는 그런 인간미(?)가 가득... ^^;;;


-그래서 그런지... 고우영 화백이 그려내는 서유기를 다시 보고 있노라니,

새삼 서유기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서유기의 세계관은 기득권이 짱이라는 식이다.

 별 볼일 없는 요괴나 인간 악당들은 손오공이 휘두른 여의봉에 맞고 그냥 객사하는 게

보통 패턴이지만, 어디 하늘나라 무슨 감투를 썼던 놈이나, 어디 있는 집 자식이거나 하는 놈들은

노숙자처럼 이름도 뭣도 모르게 죽어가는 게 아니라 자기 성분에 맞게 구제되고 목숨을 부지하고

심지어 원래 자리로 복권되는 기회도 갖는다.

 지나가는 무지렁이 서민 악당들은 손오공의 여의봉에 아무리 처맞아도 누구 하나 구하러 오지

않지만, 그렇게 있는 놈들이 요괴짓을 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난다 긴다 하는 보살과

그 시다바리들이 번개같이 나타나 구해간다.

 참 이렇게 더러운 세상이라니. (^^;;;)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걸 초월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들이나,

오랜 노력 끝에 인간의 지위를 벗어난 존재들이나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능력은 없으면서

어쩜 그렇게 인간적인지!

 유혹에 휘둘리는 것 정도는 일상다반사,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자로서의 자제심이나 아량도

없이 그냥 지들 성질대로 하고 산다. 앙심을 품고 꽁해 있다가 보복도 하고, 자기 새끼 혹은

자기 패밀리에 의해 미물들이(!) 피해를 보는 건  모른척 하지만, 그런 나쁜 짓을 한 놈들이

위험에 처하면 귀신같이 달려와 구해낸다.

 도대체 무슨 수련을 했길래? 도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었길래?

 특히나, 말단(!) 도사들 정도면 그려려니 하겠는데, 옥황상제라는 놈은 정말로 능력 하나 없고

그렇다고 옥황상제라는 위치에 걸맞는 대인배스러움도 없고... 정말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건

그렇게 변변찮은 존재들이 옥황상제 자리를 해먹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오정과 저팔계... 이들은 뭐 일단 태생적으로 있는 놈들이긴 하지만, 참 인간적이다.

 사오정은 유혹에 흔들리고 인간적인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좋은 방향으로 해보려는

비교적(!) 나은 인간 캐릭터라면, 저팔계는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배고프면 배고픈대로

여자가 고프면 여자가 고픈대로 욕망을 충실하게 발산하고 잘난 동료에 대한 시기와 질투,

자리에 대한 욕심 등등... 봐도 봐도 참 인간적이다. (^^;;;)


-오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주인공이고, 사실상 가장 이상적인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놀래키고 땅을 진동시킬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최악의 상전이랄 수 있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고난의 길을 헤쳐나간다. 자기보다 능력도 열정도 딸리는 동료들을 챙기며,

뭣보다 그 삼장의 비위를 맞춰가며 진정한 고행의 길을 걷는데... 그런 손오공에게 고마워하긴커녕,

기회만 생기면 내쫓지 못 해 안달인 삼장! 나같으면 이런 상전은 어떻게든 기회를 봐소 처리(!)해

버리거나, 차라리 죽더라도 이 더러운 세상 가만 안 두겠다!...라고 난리라도 부릴지도 모르겠는데,

참 묵묵하게 그 고난을 견뎌낸다. 진짜 인간이 아니다. (^^;;;)


-하지만, 삼장법사가 출동한다면?

 삼장법사는 진정 최악의 인물이다.

 일단 숨은 출생부터 이미 로열 패밀리로 되어 있으며,

그 출생 덕분에 이런 대형 사업도 손쉽게 수주를 받는다.

 보험 같은 거 들지 않아도, 자기네 패밀리에서 다 무한지원을 한다.

 서민 입장에서 이렇게 짜증나는 도련님 주제에... 하는 짓은 도련님의 레퍼런스!

 정말 보면 볼수록 손오공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

-그런 삼장법사의 진수를 잘 표현한 영상 작품이 있으니... 바로, 주성치의 서유기다.

 이 작품은 뭐 말이 필요없는 작품이긴한데... ^^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서유기로서도 정말 잘 만들어졌다는 게 인상적이다.

 그냥 개그 혹은 주성치 영화...정도로만 보기엔, 이 작품에서 서유기의 캐릭터들을

설정하는 안목은 무서울 정도...


-예로, 그 삼장법사의 한 장면을 꺼내 본다.



[ 이미지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

-참다 못해, 삼장법사를 죽이려고 하는 손오공 앞에 관음보살이 나타나고...


-초강적 관음보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빡 돈 손오공은 결사적으로 싸우려고 한다.


-그 급박한 순간, 자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일어난걸 아는지 모르는지

삼장은 한가롭게 옆에 떨어진 월광보합을 주워가며 손오공에게 한소리를 하는데...


-이 위험한 순간에 손오공에게 한다는 소리가... -.-;;;


-그 대단하다는 손오공조차, 어이가 없어 여의봉을 떨어뜨려 버리고...


-하지만, 그런 손오공에게 삼장법사의 어처구니 없는 공격(!)은 계속 되고...


-캡쳐한 장면들은 실제 장면의 일부일 뿐! 삼장의 수다는 훨씬 더 길다. -.-;;;


-삼장의 뻘소리를 참다 못한 오공이 월광보합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상황파악 못 하는 삼장의 헛소리 퍼레이드는 계속되고...

역시, 실제 영화 장면의 헛소리는 이보다 더 길다. -.-;;;


-참다 못한 오공은 삼장을 패대기쳐 버리고...


-그야말로 실성한듯이 웃어 제끼는데...


-오공의 살려달라는 말이 피 맺힌 절규로 느껴진다. T T


-오공은 자신의 심정을 파리를 '잔인하게' 죽이는 설명으로 표출을 하고...


-그렇단다. 제삼자인 자로서도 어서 죽여버려~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그 잘난 관음보살에게 오공의 피맺힌 절규 같은 건 전혀 들리지 않을 뿐이고...


-이 꼴을 보고도 관음씨는 오공만 때려잡겠는데...


-여기서 갑자기, 삼장의 태클!?


-그럼 그렇지... 삼장의 잔소리는 이 순간에도 술술 터져 나오고...

역시나, 실제 영화 장면에선 이 캡쳐보다 더 많은 헛소리들이 나온다. -.-;;;


-그 대단하다는 관음보살조차 삼장의 떠벌떠벌에 기가 막힐 지경인데...


-오공을 다스리라고 준 금강권은 왜 쓰지도 않냐고 관음이 묻자,


-관음이 준 금강권에 대한 삼장의 불만 사항이 터져 나오는데...


-밑도 끝도 없는 삼장의 잔소리에, 옆에서 듣고 있던 오공은 슬며시 귀를 막아 버리고...


-진정한 동물학대가 뭘까? 차라리 금강권을 씌우는 게, 이런 수다폭탄보다 낫지 않나? (^^;;;)

 아니 뭐, 사실 이런 무시무시한 잔소리 필살기가 있는데 굳이 금강권을 사용할 필요가 없겠지.

실제로 영화에서 삼장의 수다가 무서워 지리멸렬하는 요괴군단에 그것도 모자라 자살하는 요괴들이

나올 정도니까! -.-;;;


-블라블라블라 끝에, 자기가 아는 기술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줄테니 금강권을 새로 맞추는 게

어떻냐고 관음에게 제안까지...


-참다 못한 오공이 날아와 삼장의 목을 움켜 쥐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와 삼장의 목을 조르는 또 하나의 손!


-오공도 삼장도 순간 눈이 동그래져갖고 그 사람을 쳐다 보는데...


-그 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관음보살!

 그 관음보살이 자기도 모르게 목을 조르게 만들 정도의 수다라니!

나같은 범인으로선 감히 상상조차 못할 경지일 것이다. 덜덜덜~ (^^;;;)


-명장면 아니 뭐 영화 자체가 명작이긴 하지만, 정말 센스가 폭발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굴러다니는 도사 나부랭이도 아니고. 무슨 전투 나한도 아니고, 무려 저 초월적인 보살인

관음보살이 자기도 모르게 목을 조르게 만들다니! ^^


-손오공의 표정이 정말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T T


-주성치의 서유기 얘기가 나왔으니, 이분이 빠지면 안 되겠지. ^^


(DVD는 국내에도 정식으로 나왔는데... 블루레이는 아직 안 나와서 참 유감이다.

홍콩판의 한글 자막은 쓰레기 자막으로 악명이 높아서... ^^;;;)



-서유기의 삼장법사란 정말 질 나쁜 상전의 끝을 보여준다.

 도대체 왜 불경을 가지러 가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는지 전혀 납득을 못할 정도로.

역시나 그 전생의 낙하산 덕분? -.-;;;


-법사로서 자격이 있을까?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맨날 투정만 부리면서?


-현실감각도 전혀 없으면서 무능의 극치다. 서유기에서 삼장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오공 일행에게 화풀이하는 것과, 뭐 해와라 뭐 해와라 이런 거 밖에 없다.

아, 오공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주문은 외울 줄 아는군.

 그러면서 요괴나 산적이 나타나면 벌벌 떨기만 하고, 오공이 나서서 처리하면 그제서야

왜 죽였냐고 날뛴다. 오공의 말처럼, 그놈들이 다른데 가서 누굴 죽이고 무슨 나쁜 짓을 하는지

그런건 관심없으면서 당장 자기 눈앞의 만족이 중요할 뿐인 질 나쁜 위선자.


-그런 주제에 주성치의 서유기 영화에서처럼, 잔소리는 밑도 끝도 없다.

 다소 영화적인 연출이 가해지긴 했어도, 영화에서의 삼장법사의 모습은 삼장의 정체성 그 자체!

제작진의 서유기에 대한 이해, 그리고 번뜩이는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암튼... 서유기의 슈퍼 잉여, 아니 잉여를 넘어서는 내부의 적, 최악의 상전인 삼장.

그런 정체성을 재미있게 살려낸 고우영 서유기. 다시 보고 또 봐도 참 재미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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